그날 꿈 속의 일그러진 세계는, 무수히 많은 검고 각진 조각들로 부서지고 있었다.
지금 누군가는 어둠 속에 누워있고, 그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단정하게 앉아있는 또 다른 '존재'가 보였다.
형태도 없고,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창백한―
??? : ......나는 더 이상 못 견디겠어.
??? : 네가 가진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나와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결코 기억해내지 못하겠지.
??? : 우리에게 남은 건 고작 이 5분 뿐이야. 네 의식이 점차 모호해지고,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머지않아 나를 떠나버릴, 그렇게 죽어가는 시간.
??? :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내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야.
??? : 최근 들어서, 나는.... 내가 네 죽음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어.
??? : 네가 실패하기를. 네가 종말을 맞기를. 우리가 5분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어서 세계가 무너져내리기를.
그것은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마치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그의 곁에 누워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 : 나는 살아있는 널 만나고 싶어! 어디서 만나게 되든,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되든 좋아. 살아 숨쉰다면, 온전히 서로를 마주볼 수만 있다면―!
??? : .........여기만 아니면 돼. 이 순간만 아니라면 상관없어.
??? : 난―― 이미 미쳐버린 걸까?
극렬한 통증이 몸을 내달렸다. 육체가 무수히 많은 작은 조각들로 쪼개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긁어내는 것만 같았다.......
'공허'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모든 신경을 뒤틀고 있다.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던 중, 차갑고 묵직한 무언가가 내 손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잡은 순간 통증이 약간 가라앉았고, 그 모든 것들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애타게 슬퍼하며 내 귓가에 위로의 말을 속삭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익숙하니, 이미 천만 번을 반복해왔던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 재........」
》 .......너 거기 있어?
》 손에 닿아온 것을 강하게 붙잡는다.
??? : ......!!
그 무언가를 붙잡은 순간, 거대한 몸을 가진 괴물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누워있는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을만큼 작아졌다.
그가 내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우리엘 : 너를 만나러 왔어, 시에나.
우리엘 : 새로운 이름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능은 네가 죽기 전에 느끼는 고통을 영원히 지워버리기에 충분해. 그러니까,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이미 이룬 셈이야.
우리엘 : 이제부터 네가 윤회의 틈새에서 고통을 느끼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거야.
우리엘 : .......미안해, 약속을 어겨서. 결국 네게 직접 가서 설명해주지는 못했네.
우리엘 : 어쩌면 미래에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적이 될지도 몰라...... 아니, 아마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거야.
우리엘 : 아이솔린은 결코 나를 믿지 않아. 하지만, 네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나는 그녀의 지시를 따를 생각이야.
우리엘 : 우리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한.......
눈앞의 모든 것이 흐릿하다. 쏟아지는 눈송이가 꼭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엘 : 시에나. 나는 너를 선택할 수 있고, 또 너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어. 앙투아네트, 안, 와타리, 이자크, 웬시, 우류......
우리엘 : 모든 사람들을. 너와 이야기할 수 있고, 네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엘 : 나는 멈추지 않고 하나만을 바라왔어. 단 한 번이라도 좋아. 네가 나를 선택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엘 : 너에게 나는 수만 번의 일주일 중 단 한 번의 우연일 뿐이야. 네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엘 : 하지만 나에게 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유일하게 소중히 여겼던 존재. 하나뿐인 위안.
우리엘 : 한 송이의 꽃이 필 때마다 너는 기억을 잃어. 그렇기 때문에 단서의 일부를 모아도 전부를 볼 수는 없어.
우리엘 : 그렇지만 아이솔린의 말이 맞아. 인간의 정신은 과도한 기억을 견디지 못해.
우리엘 : ......그때 나는 생각했어. 아, 내가 인간이 아니라 다행이다, 하고. 널 도울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뻐.
우리엘 :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고통, 수많은 노력...... 모형정원의 규율 아래 있는 네가 전부를 볼 수 없다면, 그건 내가 대신할게.
우리엘 : 네가 열어온 모든 미래는 반복되는 윤회 속에서도 의미를 잃지 않게 될 거야.
우리엘 : 이 신의 체스판 위에서, 내가 너 한 사람을 위한 암수가 될게.
그 목소리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엘 : 그리고 언젠가, 진정한 기회가 왔을 때―
우리엘 : 네가 내 목을 베고 시체를 밟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너를 위해 모든 해답을 펼쳐 문을 열어줄게.
우리엘 : 그 전까지는, 아주 조금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굴게 해 줘.
우리엘 : 너와..... 이 작은 스노우볼 속에서, 춤을 추고 싶어.
「세계 재구........」
잿빛 눈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뉴스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물건 하나가, 책상 위에 조용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림책. 이건 분명 비안틴이 그리던 건데, 어떻게 여기 놓여있는 걸까?
책 표지를 넘기자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그림이 보였다. 첫 장의 그림은 상당히 서투른 솜씨로 그려져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연스러운 그림이 이어진다.
마치 이걸 그리며 그림 그리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간 것 같았다.
그림책은 인어공주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인어공주는 다른 등장인물로 바뀌었는데...... 하얗고 거대한 무언가가 인어 대신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에는, 비뚤게 쓰여진 글자가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어느 바다의 괴물은 육지의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왕자는 꿈 속에서만 괴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 왕자가 해변가를 산책하며 신하들에게 파도 소리 덕분에 푹 잘 수 있었으며 이렇게 달콤한 잠은 정말 오랜만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괴물은 아주 기뻐했지만, 육지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밤에도 찬란한 빛을 내는 육지 위의 세상을 흠모했다.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그 괴물은 심해의 마법사를 찾아갔다.
마법사는 말했다.
"이렇게 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직접 해안가로 나가지 않는 거니?"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네가 일으킨 물보라는 홍수가 되어 그 왕국을 물에 잠기게 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넌 그 사람을 바다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어."
괴물이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러자 마법사는 괴물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있지. 하지만 네 몸은 너무 커서, 그 성 안에 다 들어갈 수 없는걸....."
괴물이 말했다.
"내 몸이 너무 크다면, 이 날개를 잘라내자."
"내 사지를 부러트리고,"
"내 목을 베고, 배를 갈라."
"내 심장을 조각해 성 안에 가져가 그 사람의 곁에 두면 돼."
"내 심장은 그 사람과 비슷한 크기니까."
"그 사람이 내 심장에 손을 얹으면, 그것이 자신을 위해 고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 이후로 다시는 고통스러운 죽음이 없을 거야. 이제부터는, 좋은 꿈만 꾸길.
다시 만나자. 사랑하는 나의 이방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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