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5

 

2일차 아침, 성스러운 별 교회.

 

 

꿈 없는 잠에서 깨어났다.

창 밖에 무언가가 날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이 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잿빛 눈. 지금은 눈이 내려야 할 계절이 아니다.

 

손에 쥐고 있던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힐다의 전화가 왔다.

 

 

 

 

 

2일차 아침, ???

 

 

이스카리오 : 기괴한 눈이로군요.

 

이스카리오 : 당신과 관계가 있습니까? 비안틴.

 

비안틴 : 그럴 리가요. 저는 줄곧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이스카리오 : 이쪽으로 오십시오. 펜을 들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보를 기록하세요. 제가 기록을 대조시키도록 하겠씁니다. 그리고, 당신이 교회의 서고에서 가져온 그 책은―

 

이스카리오 : 음? 페이지 한 장을 찢어 시에나에게 준 건가요.

 

이스카리오 : 상관 없습니다. 그 어린 아가씨가 당신의 도움 없이 계획을 뒤집을 수 있을 물보라를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비안틴 : ......이스카리오, 당신도 신을 불러낼 생각입니까?

 

비안틴 : 어째서 이런 일에 집착하는 거죠? 신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바란다 해도 당신이 원하는 보상을 안겨주지 않을 텐데요.

 

이스카리오 : 보상이라. 하하, 어항 속의 금붕어에게 무슨 보상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스카리오 :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도안을 제게 주시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

 

이스카리오 : 당신은 총명합니다, 비안틴. 그렇기 때문에 저도 아무 걱정 없이 당신에게 이런 일을 맡길 수 있죠.

 

비안틴 : ........네.

 

 

비안틴은 법진을 그리고 있는 이스카리오에게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가 깊은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추는 것에 따라, 표정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금세 지워져 버렸다.

 

 

 

 

 

2일차 아침, 항구 도시

 

 

지금 이곳은 비안틴이 무력화 시켰던 마지막 문장이 있던 곳이었다. 힐다는 세츠가 이 일에 관여하는 것은 거부했지만, 이 근처에서 대기하는 것은 허락해 주었다.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보니, 힐다는 담벼락에 기댄 채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힐다 : 과연.... 예상했던 대로군.

 

힐다 : 이게 바로 비안틴과 네가 파괴했다던 문장의 흔적이야?

 

 

눈 앞에 문장엔 그날 비안틴과 함께 덧그렸던 그림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청소 업체가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다.

힐다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밟았다.

 

 

힐다 : 비안틴이 이 문장을 모두 개조해버렸어....... 덕분에 이 문장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지.

 

힐다 : 정교하고 치밀한 수법이야. 박수가 절로 나오는군. 그리고 시에나, 당신 역시 남을 이렇게나 쉽게 믿는다는 점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해.

 

힐다 : 시체가 있던 비안틴의 방에서 리리코와 봤던 문장은 기억하고 있어? 그 해석 결과가 나왔어.

 

힐다 : 그리고 그 결과대로라면, 우리가 찾아내야 할 적이 이스카리오인지, 비안틴인지조차 확언할 수 없어.

 

 

》 뜸 들이지 마.

》 대체 어떻길래 그래?

 

 

힐다 : 그 방에 그려져 있던 건 흑관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신을 불러내는 법진이야. 이 접경도시에 있는 모든 문장의 핵심이지. 게다가, 그건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했어.

 

힐다 : 즉, 우리가 만난 것보다 더 이전에 흑관은 이미 의식을 마쳤다는 뜻이야.

 

힐다 : 의식이 완성된 곳이 바로 그 방이고, 의식에는 제물이 필요하지. 그 제물은 살아있는 인간.

 

힐다 : 내가 추측 하나를 해 봤어. 우리가 흑관을 섬멸했던 의식 하루 전날, 진짜 비안틴은 어떠한 이유로 그 방에서 혼자 법진을 완성시켰고, 그로 인해 사망했다.

 

힐다 : 의식은 성공했을거야. 그 방엔 어떠한 '존재'가 나타났으니까.

 

힐다 : 그 방에 있던 시체는 비안틴이야. 그 '존재'는 진짜 비안틴을 집어삼키고, 그의 모습을 빌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음 날 의식 장소에 도착했지..........

 

힐다 : 잘 생각해봐. 당신과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던 건 대체 뭐였어?

 

 

힐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며 들고 있던 가방에서 얇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힐다 : 말해 봐, 시에나. 혹시 그동안 이상한 일을 겪거나 하지는 않았어?

 

힐다 :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비안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라도 괜찮아.

 

 

》 요 며칠간 이상한 꿈을 꿨는데.....
 
》 어제는 꿈을 안 꿨어.

 

 

힐다 : 어떤 꿈이야?

 

 

》 슬픈 꿈.

》 이상한 꿈.

 

 

힐다 : 꿈은 추상의 일종이야. 하지만 당신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쳐 당신을 억압하거나, 혼란에 빠지게 하거나, 최면 작용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게 가능하지...... 이측회가 조사하는 이변 중에서도 이런 종류가 꽤 많아.

 

힐다 : 괴물과 인간은 달라― 행동 원칙과 행동 방식 모두가. 인간이 괴물과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면 자연히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

 

힐다 : 그 중에서도 꿈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표현이야.

 

힐다 : 이걸 줄게. 제대로 받아!

 

 

힐다가 무언가를 내 쪽으로 던졌다. 어찌저찌 받아들어 확인해 보니,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온통 새카만 단검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고, 혈조가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온도가 낮다. 검날에는 기이한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자루 끝에 박힌 핏빛 보석이 빛을 발한다.

 

 

힐다 : 오늘 자기 전에 이걸 머리맡에 두고 자. 뭔가를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힐다 : 좋아, 당신은 그들을 계속 추적하도록 해. 나도 흑관을 추적할게. 접경도시에 떨어진 시한폭탄이 두 개...... 이 도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상조차 안 가네.

 

힐다 : 조심해, 시에나. 미쳐버리지 않도록.

 

 

 

'비안틴' 의 몸 속에 존재하는 이가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존재일까?
힐다에게서 단검을 한 자루 받았으니, 이 단검으로 답을 찾아내자.

 

 

 

 

 

2일차 밤, 성스러운 별 교회.

 

 

힐다가 준 단검을 머리맡에 두었다. 불안감으로 엉망이 된 마음을 안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냄새였다.

무언가가 부패할 때 나는 냄새가, 여러 가지가 뒤섞여 타는 것 같은 냄새가, 혈향과 그을음의 냄새가, 비릿한 바다 내음이.....

그리고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기이한 장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여행가방에 구겨넣는 듯, 탄알에 우주를 담아내듯, 거대한 몸을 가진 무언가가 이 작은 방 안에 존재했다.

 

아드득― 아드득― 우드득―

 

최후의 소리. 

깨물어 부수는 소리. 씹는 소리. 삼키는 소리.

짐승은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를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 : 기적, 기적은 정말 훌륭해.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 방에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짐승뿐이었다.

 

 

??? : 내가 뭘 하면 돼? 누구든 속일 수 있고, 누구든 유혹할 수도, 누구든 죽여줄 수도 있어.

 

??? :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될까?

 

 

조심스럽게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니, 짐승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팔과 다리를 제어할 수가 없다........

 

 

??? : 나는 이쪽 방면으로는 아직 신입이야. 시에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이거든.

 

 

뼈가 씹히는 소리가 더욱 더 선명하게 들러붙어 내 고막을 긁어온다.

 

 

》 계속 보자.

》 더 이상 다가가면 큰일 날 거야..... 눈을 감아.

 

 

??? : 타깃의 이름이..... 아이솔린? 그때 봤던 게 그녀였구나...... 나의........

 

??? : 그런 김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볼게.

 

??? : 이 이상으로 이 몸에 적응할 시간도 없어. 그 사람이 이 얼굴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응,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

 

??? : 부담 같은 건 큰 문제가 아니야. 나는 참고 인내하는 게 특기니까. 

 

??? : 이유가 궁금해? 당연히 첫 인상을 위해서지.

 

??? : 너도 알다시피 본래의 나는 성별이 없어. 그래서 그 사람의 취향에 맞게 결정하고 싶었는데.......

 

??? :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이 몸과 정체성뿐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네.

 

 

짐승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 이상 다가간다면 들킬 것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다.........

 

 

》 계속 보자. 

》 눈을 감지 않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어서 눈을 감아!

 

 

??? : ......나는 그 사람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모든 존재가 부러워.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질투하고, 그 사람과 만날 가능성을 가진 모든 존재를 증오해.

 

??? : 그 사람이 여자를 좋아한다면 여자가 되고, 남자를 좋아한다면 남자가 될 거야.

 

??? : 왜냐하면 나는―

 

 

짐승이 천천히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봐야 한다! 봐야만 한다! 보지 않으면 안 돼!

 

 

》 계속 보자.

》 이게 마지막 기회야, 빨리 눈을 감아!

 

 

―시선이 닿았다. 동시에, 서로를 바라본다.

일곱 개의 거대한 머리가 동시에 방향을 틀었다. 일제히 나를 주시한다.

머리 위의 관이 기이한 빛을 낸다. 눈동자가,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어온다......

 

짐승은 혈흔과 살갗으로 얼룩진 커다란 입을 벌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예상했던 공포의 순간은 닥쳐오지 않았다. 머리가 으스러지는 대신, 이마에 무언가가 살짝 닿아왔다. 마치 눈꽃이 스치는 듯한 감각이었다.

 

 

??? : 정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어서 눈을 감는 게 좋아." 라고.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 : 엿보는 것은 쌍방향적인 행동이야. 네가 나를 본다면, 나도 너를 볼 수 있어.

 

??? : 과거의 기록이라도, 그걸 들여다보는 행동은 지금의 네겐 너무 위험해...... 절대로 들켜선 안 돼.......

 

??? : .......반드시......없애지.........

 

 

의식이 빠르게 부유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주위의 풍경이 흐릿해지고 현실이 뚜렷해졌다.

방금 보았던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진다. 기억은 빛이 바래 녹아간다.

 

 

??? : 잊어버려. 네가 보았던 모든 것을 모두 잊는거야. 그때의 5분처럼, 전부 잊어버리면 돼.

 

??? : 괜찮아...... 이번 일주일도, 이제 곧 끝이니까........

 

 

 

눈을 감아. 그건 네가 알아야 할 일이 아니야. 가까이 오지 마. 그만 봐......

이미 늦었어.

 

 

 

 

 

 

 

▷ 눈을 감을 경우 공포감이 사라지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듭니다.

엔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 2일차 종료. 1일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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