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5

 

3일차, 꿈?

 

 

??? : 나는 기뻐.

 

??? : 아주― 아주 즐거워. 너무 기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 : 응, 곤란한 부탁을 받아버렸지만 분명 이것도 기회라고 할 수 있겠지.

 

??? :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나보다 오랜 시간을 준비한 존재는 없을 것 같아.

 

??? : 너와 잘 지내고 싶어....... 비록 지금 당장 위화감 없이 인격에 적응하는 건 어렵겠지만, 나는 배우는 게 빠르니까 상황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을거야.

 

??? : 너는 어떤 성격을 좋아할까, 부드러운 성격? 명랑한 성격? 엄격한 성격?

 

??? : 어떤 성격이라도 괜찮아. 모든 것이 너를 위해 '새로 태어나는' 거야.

 

 


 

 

3일차 아침, 성스러운 별 교회.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비안틴은 이미 방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인다. 그의 제안대로, 우리는 조용히 교회의 서고로 숨어 들어갔다.

 

 

》 여기가 바로 성스러운 별 교회의 서고......

 

 

비안틴 : 응, 세츠 신관이 말한대로네.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

 

비안틴 : 콜록콜록! 맙소사, 이 먼지 좀 봐......

 

비안틴 : 책을 찾고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까, 먼저 네가 시간 보내면서 읽을만한 책부터 찾아줄게.

 

비안틴 : 어디 보자..... 음, 으음...... 이게 좋으려나. 

 

비안틴 : 자, 여기. 《성스러운 별의 발전과 비화― 당신이 모르는 6가지 극비》.

 

비안틴 : 붉은색이라 그런지 눈에 확 띄는 디자인이네....... 확실히 내가 찾으려는 자료보다는 이런 야사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비안틴은 웃으며 손을 흔들곤 책이 가득한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고요함 속에 이따금씩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이 며칠 사이에 계속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피로해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 비안틴, 찾았어?

 

 

비안틴 : 아, 다 읽은거야? 내 쪽도 다행히 찾은 것 같아.

 

비안틴 : 자, 바로 이 책이야.

 

 

》 눈알로 뒤덮인 귀신의 부적 같은데.....

》 전혀 못 알아보겠어!

 

 

비안틴 : 흑관과 관련된 책이야. 나도 비안틴의 기억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어. 이 책이 쓰여진 시기 자체는 매우 이르지만.

 

비안틴 : 이게 있으면, 내 몸의 문제를 대강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순간 눈부신 빛이 덮쳐왔다.

광원이랄 것은 샹들리에 뿐인 서고의 입구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을 따라 백발의 신관이 소리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비안틴 : ......이스카리오.

 

이스카리오 : 저는 성스러운 별 교회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왔답니다. 두 분께서는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군요.

 

비안틴 : 허가 없이 무단으로 서고에 들어온 것은 제 잘못입니다. .......시에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에요.

 

이스카리오 : 관계 없는 일? 틀렸습니다. 당신이 제게 말해야 하는 건 그게 아닐 텐데요?

 

이스카리오 :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당신들이 무산시켰던 의식의 목적을 파헤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조사했으니 필시 성과가 있겠죠.

 

비안틴 : ............

 

이스카리오 :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거짓말쟁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비안틴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이스카리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저곳에 언제부터 푸른 가시덤불이 자라 있었지?

 

 

비안틴 : .......자료와 대조시켰을 때, 흑관은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법진을 남겨둔 것으로 보입니다.

 

비안틴 : 최초에, 성스러운 별 교회가 신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과 비슷하죠.

 

비안틴 : 인간은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부르짖고, 또 숭배하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 높은 세계로 전달하고자 위해.........

 

비안틴 : 다시 말해, 신을 부르는 의식입니다.

 

이스카리오 : 아주 좋습니다. 

 

이스카리오 : 거짓말은 하니 않는군요. 흑관의 첩자인 앤더슨도 똑같은 말을 했죠. 정직함이란 실로 아름다운 품성이 아닌가요. 만약 당신이 거짓을 고했다면, 두 분 모두 이 가시에 꿰뚫렸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스카리오 : 하지만 제겐 아직 당신의 협조와 검증이 필요로 하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 주셔야 할 것 같군요, 비안틴.

 

비안틴 : .......알겠습니다.

 

 

》 가지 마!

》 비안틴의 손을 붙잡는다.

 

 

비안틴 : ......괜찮아, 시에나.

 

비안틴 : 작은 도움을 주는 것 뿐이야. 꼭 돌아올게. 나를 믿어.

 

비안틴 : 너와 한 약속을 어길리가 없잖아.

 

 

비안틴은 내 손을 한 번 힘주어 잡고, 그 신관을 따라 떠났다. 서고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시들어가고 있는 푸른색 가시덤불뿐이다.

서고의 문이 닫히고, 공허한 정적만이 남았다.

 

 

세츠 : .....시에나! 간 떨어질 뻔 했네, 겨우 찾았잖아!

 

세츠 : 교회 어디에서도 너희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전에 비안틴이 서고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게 생각나서 이리로 와 봤더니 문이 잠겨있는 거야.

 

세츠 : 그 가시를 태워버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다친 곳은 없지? 비안틴은?

 

 

》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세츠에게 알린다.

》 가능한 한 빨리 이스카리오를 찾아야 해.

 

 

세츠 : ......그래, 나도 방금 소식을 들었어. 이스카리오가 교회에 잠복해 있던 흑관의 잔당을 뽑아내고, 본청의 서고에 들어갔다고 해.

 

세츠 : 그가 안에서 뭘 찾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카리오가 나간 직후에 책 한 권이 사라졌어 본청이 발칵 뒤집어졌어!

 

세츠 : 난처하게 됐어. 본청에서 이스카리오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도 적은 숫자가 아니야. 지금 양쪽이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데, 실종되었던 그 당사자가 설마 우리 쪽으로 돌아오다니.

 

 

》 나, 이스카리오가 뭘 가져갔는지 알 것 같아.

 

 

세츠 : 뭐? 어떻게 알아?

 

 

손을 펼쳐보니, 손 안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과 핏빛의 보석이 박힌 귀걸이가 있었다.

그것은 어느 책에서 찢어낸 페이지였는데, 아까 비안틴이 손을 잡는 척 내 손에 쥐어준 것이다. 귀걸이는 비안틴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보석의 크기가 더 컸다.

 

 

세츠 : 이건...... 비안틴의 몸에 있던 문양들.....?

 

세츠 : 그렇지만 이걸로는 안 돼! 나를 포함해서 지금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쪽 방면을 잘 모른다고......

 

시에나 :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 아마 알고 있을거야.

 

세츠 : 그게 누군데?

 

 

》 이측회의 힐다.

 

 


 

 

 

힐다 : 당신이 먼저 연락을 해온 건 처음인데. 연락이 활발해졌다는 건 우리 사이의 협력이 좀 더 견고해졌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힐다 : 비안틴에게 문제가 생긴 거야?

 

 

》 비안틴의 문제라기보다는......

》 지금은 이스카리오가 더 위험해.

 

 

힐다 : 이해했어. 나는 아직도 흑관을 추적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아. 비안틴을 찾는 건 당신 스스로 해야 해.

 

힐다 : 그가 당신에게 줬다던 그 종이는 내 단말기로 보내 줘.

 

 

종이를 찍어서 힐다에게 보냈다. 힐다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진정되지 않아 심란했고 정신도 혼란스러웠다.

바로 그 순간, 주머니 속에 있던 귀걸이에 손이 닿았다. 원형으로 둥글게 컷팅된 보석은 이상하리만치 차가웠지만, 손에 쥐고 있으니 초조함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단말기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힐다 : 실마리가 좀 잡혔어. 그 세츠라는 신관도 당신 옆에 있어?

 

시에나 : 응, 있어.

 

힐다 : 스피커폰으로 돌려 봐.

 

힐다 : 세츠, 이스카리오가 성스러운 별 교회의 서고에서 빼돌렸다던 책이 붉은 표지에 '타라 석판'이라고 하는 그게 맞아?

 

세츠 : 응? 아, 내가 듣기로는 그래. 어떻게 안 거야?

 

힐다 : 새들에게 들었어. 애초에 너희를 그 정도로 긴장시킬 수 있는 건수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힐다 : 시에나. 잠깐이지만 교회에 머물렀으니, 흑관과 성스러운 별 교회의 교리가 충돌한다는 것 정도는 너도 눈치챘겠지.

 

힐다 :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리리코를 납치한 자식은 한때 이측회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흑관의 간부라는 거야.

 

힐다 : 오래전에 전멸시킨 흑관의 본거지에서 그 책의 상편을 찾아냈어. 이건 그 자식이 이측회를 뜰 때 빼돌린 거고.

 

힐다 : 그 책은 검은색 표지에, '사틀라 석판'이라고 부르고 있어.

 

힐다 : 만약 흑관이 접경도시에서 행했던 의식이 사틀라 석판에 적혀있던 그것이라면, 이스카리오의 목적은 분명해지지― 석판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 중 이스카리오가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건 비안틴이 유일하니까.

 

세츠 : 이스카리오도...... 신을 부르고 싶어 하는 건가?

 

힐다 : 당신 쪽 사람이잖아.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힐다 : 세츠. 나 대신 성스러운 별 교회 본청에 우리 이측회와 거래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 줘.

 

힐다 : 내 목적은 흑관이야. 그들이 아직 접경도시를 떠나지 않은 이상,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어.

 

힐다 : 그리고..... 흑관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면, 흑관의 간부― 페리안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계획이 더 있을 확률이 높아.

 

힐다 : 그들의 행선지를 계산해보려면, 타라 석판의 사본이 필요해. 만약 교회가 이스카리오를 체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이측회와 협력하는 게 어때.

 

힐다 : 덤으로 공짜 정보를 하나 주자면, 당신들이 교회에 몰래 숨겨 뒀던 그 강아지도 아마 흑관에 끌려갔을 거야.

 

세츠 : .......뭐?

 

힐다 : 믿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 교회 본청에는 이스카리오를 지지하는 자들이 있으니, 분명 그를 아니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당신이라면 이 정보를 기꺼워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힐다 : 당신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고민해볼 시간도 필요하겠지. 마음을 정하면 다시 연락하도록 해.

 

 

통신이 끊어졌다.

 

 

시에나 : 세츠..... 성스러운 별 교회 본청 쪽은 어떻게 할 거야......?

 

세츠 : 시에나, 시에나. 이렇게 얼굴 찡그리면 주름 생긴다.......

 

 

세츠가 나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꼭 위로하는 것 같은 손길이었다.

 

 

세츠 : 괜찮으니까! 그렇게 세상 무너진 것 같은 얼굴 하지 말고, 더러운 교섭 같은 건 어른에게 맡겨 둬! 거창하게 말해도 결국엔 어르신들이랑 이야기하는 거랑 비슷하잖아. 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지.

 

세츠 : 일단 내가 냉장고에서 비안틴이 만들어둔 아이스티를 좀 가져올게. 찬 거 마시고 진정해보자.

 

세츠 : 그렇게 찡그리고 있는다고 해도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야. 차라리 웃는 게 백 번은 낫지. 일을 시작하는 건 그 다음이야.

 

세츠 : 자, 곧 닥쳐올 바쁜 나날을 위해, 건배!

 

 

힐다가 보내 준 지도 사진을 확인했다. 그녀의 정보에 의하면, 이스카리오는 분명 이 네 군데 중 한 곳에 나타날 것이다. 비안틴도 분명 그와 함께 움직이겠지.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

 

 

 

교회 서고에서 이스카리오와 맞닥트렸고, 비안틴이 그에게 끌려갔다.
다행히 나는 힐다에게서 그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힐다가 짚어준 장소를 추적하여 단서를 찾아내자!

 

 

 

 

 

3일차, 구 시가지 순찰 - 환상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 1번 단서 ]

힐다의 지시에 따라 구 시가지로 향했다. 이측회의 사람들과 협력하여 가능한 한 빨리 비안틴과 이스카리오를 찾아내야만 한다.

 

 

오솔길을 따라 구 시가지를 누비고 다니다가 문을 닫은 은행 앞에 멈춰 섰다.

그 건물에 가까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피부에 한기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 발원지는 비안틴의 귀걸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귀걸이를 꺼냈다.

구슬을 닮은 보석이 기묘한 핏빛으로 빛난다. 붉은 빛에 침식되듯 현기증이 밀려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를 뒤따라 어둠 속에 잠겼다........

 

 


 

 

끝없는 어둠.

마치 어딘가에 못이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한 방향의 시야로만 주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차디찬 시선이 느껴졌다.

 

시야가 뒤틀린다. 다시 앞이 보였을 때는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사무실 로비와 닮은 공간이었다. 시야의 주인은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 : 시에나― 빨리 와요, 이러다 또 지각하겠어요!

 

앙투아네트 : 오셨군요. 어제 드렸던 신기사와 관련된 자료는 읽어 보셨나요? 천천히 읽으셔도 괜찮아요. 당신이 지휘사가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걸요.

 

안화 : 방금 말했던 문서를 네 단말기로 보내뒀어. 출발하기 전에 미리 읽어 두도록 해.

 

 

응? 방금 내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시야의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또 한참이 지나자, 누군가가 마침내 멈춰섰다.

그 사람이 돌아보기 직전에, 눈앞의 모든 것이 다시금 흐릿해졌다.

 

주위는 다시 어둠으로 물든다.

정적 속에서,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 : .....아파.........

 

??? : 너무 아파, 아파....... 누구라도 좋아........

 

 

시야는 점점 낮아졌다. 처음에는 등을 굽히는가 싶었는데, 마지막에는 바닥에 붙듯 몸을 낮추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몸은 무수히 많은 검은색의 각진 조각들로 분해되고 있었다. 육체가 조각날수록 비명소리도 점점 흐릿해진다.

 

시야의 주인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고개를 아랫쪽으로 당기는 것만 같았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건 '나 자신'의 얼굴이었다!

고통을 견디느라 부릅뜬 눈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다. 허용선을 벗어난 극심한 고통 탓에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흘러내린 눈물조차 허공에서 흑색 가루로 조각나 흩어진다.

입을 벌리자마자 그 속에서 흑색 덩어리가 넘쳐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치 샘물이 솟듯, 목구멍에서부터 끊임없이 역류하고 있다.

 

 

'시에나' : 구해줘―

 

 


 

 

시에나 : 하......... 하아......... 그건 대체.......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간신히 호흡을 이어갔다. 주변 광경은 이미 그 은행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봤던 건 대체 뭐지? 그건 어디서 일어난 일이지?

 

 

시에나 : 이건...... '내' 기억인가?

 

 

귀걸이는 그저 고요히 손바닥 위에 놓여있었다. 기이한 핏빛은 이미 사그라들었다.

누군가 머릿속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은 것 같았다. 사고를 이어갈 수가 없다.

계속 추적해보면.......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 1번 단서 ]

구 시가지의 어느 문을 닫은 은행에서 비안틴이 남긴 귀걸이가 찬연한 붉은 빛을 발했다.
강렬한 빛이 사그라든 뒤에는 익숙한 동시에 낯선 사람과 광경이 나타났다. 안, 앙투아네트, 안화..... 그들의 이름 하나 하나는 사실적이었으며 친근했으나 억겁의 시간을 사이에 둔 듯 아득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기억인 걸까.... 마지막에 울부짖었던 사람도.... 나인걸까......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3일차, 항구 순찰 - 신자와 불신자

 

 

[ 2번 단서 ]

힐다의 지시에 따라 항구 지역으로 향했다. 서두르자. 이번에도 저번처럼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귀걸이를 미리 꺼내두었다.

 

비안틴과 가까워지면 신호가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 같다. 귀걸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바로 다음 순간, 붉은 빛은 어김없이 나를 덮쳐온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둬서인지 이번에는 저번만큼 두렵지 않았다.

 

 


 

 

........또 누군가에 시야에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시야의 주인이 바라보는대로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신성함이 느껴지는 고요한 곳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이 나선형의 탑처럼 쌓여 있다.

시야의 주인은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걸어나갔다. 시야의 주인이 멈춰선 곳은 서고의 입구였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응? 문이 열리는 것 같은데?

커다란 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주위를 살피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스카리오 : ..........

 

 

검은 머리의 소년은 서고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이스카리오 : 그 사람들이 말했던 게 아마 이쪽에 있을 텐데......

 

 

아이는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문득 오른쪽에 있는 책장에 팔이 살풋 닿는다.

 

―툭.

 

그 때 책장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그건 아주 약한 충격이어서, 꼭 책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스카리오 : ........?

 

 

소년은 책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건 붉은 표지의 고서였는데, 책장은 이미 누렇게 변색되었으며 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서고 구석에 박혀 잊힌 것 같았다.

 

소년은 책을 펼쳐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소년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이스카리오 : .........

 

서고 관리인 : .......누가 있나?

 

 

갑자기 문이 열리자 검은 머리의 소년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그 직후에, 그는 잽싸게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입구와 반대 방향으로 서고를 빠져나갔다.

그 소년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른 후 햇빛 속을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한 신관이 이쪽을 바라보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신관 : 이스카리오. 저녁 기도 시간이 다 됐는데, 넌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니?

 

이스카리오 : 죄송합니다, 지금 갈게요.

 

 

소년은 마지막으로 서고의 문을 한 번 바라보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주변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의문점이 하나 더 늘어났다.

 

 

시에나 : 붉은 표지의 책은....... 힐다가 말했던 타라 석판이겠지.

 

시에나 : 그렇다면 이스카리오는 그 책을 처음 본 게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그는 그 때.... 무엇을 본 걸까?

 

 

[ 2번 단서 ]

항구에 도착하자 어김없이 붉은 빛이 밀려들었다――
이번에 본 것은 이스카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신관의 과거로, 그 당시에 그는 아직 병을 앓지 않았다. 검은 머리카락의 어린아이는 이렇게 방대한 서고에서 어떤 비밀을 알게 된 것일까....... 이것이 이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는 또 어떻게 한 걸음씩 걸어 지금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동시에, 더 큰 의심이 마음 속에서 자라났다―― 난 과연 누구이며,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은 무엇이지?

 

 

 

 

 

3일차, 항구 도시 순찰 - 나방 떼의 향연

 

 

[ 3번 단서 ]

힐다의 지시에 따라 항구 도시로 향했다. 서두르자.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을까?

 

 

혈액의 색을 닮은 붉은 빛이 덮쳐오자, 주변 풍경은 습하고 어둑한 지하도로 바뀌었다.

암흑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두 사람 뿐이었다.

 

 

페리안 : 그럼 네게 맡길게, 비안틴. 모처럼 짬이 났으니, 나는 이 도시에 참신하고 재미있는 게 있나 찾아보고 와야겠어.

 

비안틴 : 반드시 해낼게요, 선생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가 타오르고 있다.

따스한 금빛이 아닌 창백한 회색의 불꽃. 비안틴은 눈썹을 찌푸린 채 눈으로 불빛의 흔들림을 쫓았다.

 

 

비안틴 :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네가 나타날 것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방 안은 거무튀튀한 향을 피운 듯 기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주위는 온통 고요해서 마치 도시 전체가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

 

 

비안틴 : 선생님은 역시 내일 있을 내 죽음을 준비하러 간 거겠지.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역시 내 쪽이 손해를 본단 말이지.

 

비안틴 : 분명 아직까지는 주문으로도 고전으로도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어..... 하지만, 신과 소통하는 방면으로는 나만큼 재능 있는 사람이 없잖아.

 

 

비안틴은 빙긋 웃으며 촛불을 움켜잡았다. 불꽃은 그의 손바닥을 태우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비안틴 : 너는 내가 예정보다 먼저 의식을 치르게 하고 싶어 하고 있어. 맞지? 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는 촛불을 들고 창가로 걸어가, 칠흑같이 고요한 창공을 바라보았다.

 

 

비안틴 : 나는 제일 먼저 그 분을 만나러 갈 거야.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해도, 내 자리가 그 분의 시선 끄트머리에조차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 

 

비안틴 : 어렴풋한 인상 뿐이지만, 아아........ 그 분은 나의 이상이야―!

 

 

비안틴이 손을 풀어 불꽃을 놓자, 손바닥에는 희미하게 화상 자국이 남아있었다. 상처는 하나의 기괴한 무늬로 변하더니 선을 따라 피가 베어나왔다.

그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달빛 아래서 자신의 피로 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비안틴 : 꽤 오랫동안 옆에 있었지만, 우리는 친구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애초에 네 녀석은 이런 쪽으로는 개미 눈물만큼의 능력도 없으니까........

 

비안틴 : 어차피 얼마 못 버티고 죽게 되겠지만― 네 목적이 무엇이든 행운 정도는 빌어줄게!

 

 

법진은 점점 섬세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한 모습이 되었다. 주위의 소리가 변하기 시작한다.

날개가 떨리는 소리다.

전부 닫히지 않은 서랍 사이에서 수천 마리의 나방들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날갯짓 소리가 모든 것을 뒤덮었다.

 

 

비안틴 : .......예사하라...... 나의...... 월광이여........ 칠흑과도 같은 아득한 어둠을 넘어........

 

 

창밖의 달빛이 비정상적으로 밝게 빛난다. 까맣고 더러운 나방들이 칼날처럼 벼려진 달빛을 날개로 덮었다.

가늘게 부서지는 은빛 광채, 새카만 날개, 어지럽게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곤충의 인분이 검은 안개처럼 온 방 안을 뒤덮었다.

 

 

비안틴 : ....나의 부름을 들어, 이 곳에 강림하소서......

 

 

비안틴의 광기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벽에 그려진 핏빛의 붉은 문장에서 무언가가 솟아나온 무언가가 한순간에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비안틴은 그것에게 삼켜졌고, 동시에 무언가가 그 중심에서 빠르게 형태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눈 앞의 광경이 조금씩 흐릿해졌다. 마치 시야의 주인이 내게 이 이상을 보여주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안틴은 예정보다 일찍 의식을 거행했다.

이 기억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날 밤 그 방 안에는 셋이 존재했을 것이다― 비안틴, 비안틴의 부름을 받고 온 무언가, 그리고 이 시야의 주인.

 

 

시에나 : 그렇다면, 그동안 내 곁에 있었던 비안틴은 대체 뭐지?

 

 

내가 보았던 '나', 구원을 바라던 '나', 석판을 바라보던 소년 시절의 이스카리오, 의식을 앞당긴 비안틴........ 그리고, 지금 이스카리오가 데려가버린 비안틴과 상태가 이상한 리리코, 도난당한 두 개의 석판........

 

만약 이 모든 것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이 일련의 사건들이 나타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이지?

 

 

[ 3번 단서 ]

항구 도시에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 번 신비한 광경을 보았다――
그 사람은 '비안틴' 이라 불렸지만, 나는 장담컨대 그를 결코 알지 못한다. 그는 정말 흑관 출신이었던, 내가 아는 '비안틴' 인가? 내가 아는 그 비안틴이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이 그저 오해일 뿐일까...... 그를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안함은 가라앉힐 수 없었다.
기묘한 의식, 광기어린 울부짖음, 모여드는 나방 떼......
그날 밤, 무언가가 다가왔다.

 

 

 

 

 

3일차, 시가지 순찰 - 감춰진 짐승의 눈

 

 

[ 4번 단서 ]

힐다의 지시에 따라 시가지로 향했다. 서두르자.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진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대체 '누구' 인지......

 

 

눈앞의 풍경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이번 시야는 매우 낮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시야의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바닥에 쓰러졌다. 심장 부근을 강하게 누르며 심하게 기침을 한다.

 

 

??? : 이 찢기는 듯한 감각...... '존재' 그 자체를 겨누고 있어......

 

??? :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건가...... 하, 예상했던 대로 쉽지는 않네.

 

??? : 시에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순조로우리라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뭘 말해주지 못했다고.......?

 

시야의 주인이 거울을 향해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강한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걸음이 심하게 떨렸다.

 

 

#345, 짐승의 눈동자 : ...네가 누군가를 구하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너를 구하려고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거울 속에 비안틴의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에 떠오른 미약한 미소는 그가 꼭 지금 상황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비안틴 : 드디어...... 앞으로는 더 신중해져야 해.

 

비안틴 : 무대 위의 배우들은 전부 모였지만, 체스판은 이미 부서졌어.......

 

비안틴 :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기대하고 있어요....... '어머니'.

 

 

비안틴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몸을 바르게 펴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비안틴 : 시에나, 지금부터는 내가 너에게 보내는 전언이야.

 

비안틴 : 이번 윤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너와 이야기했던 계획이 이미 절반이나 실현됐어. 네가 이 모습을 보고 있을 즈음에는 난 이미 이스카리오의 곁에 있겠지.

 

비안틴 : 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부탁을 귀담아 듣고,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왔어.

 

비안틴 : 그렇지만, 네가 누군가를 구하려고 할 때는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

 

비안틴 :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아픔도, 네 마음에 쌓이는 절망과 고통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가고 있어......

 

비안틴 : 이 세상에서 네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마지막에는 너의 적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비안틴 : 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비안틴 : 아무도 믿지 말고, 누군가를 위한 결정을 내리지도 마. 물론 나를 포함해서.

 

비안틴 : 가장 중요한 순간에........ 부디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

 

비안틴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내가 엿본 진실과 비밀을 네가 '볼 수 있게' 하는 것 뿐이야.

 

 

거울 앞에 선 비안틴은 손을 들어올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왼쪽 눈에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각막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피가 베어나왔고, 결정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흐려지며 온 사방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비안틴 : 천만 번의 윤회 속에서, 난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었어......

 

비안틴 : 만약 이 시선에도 의미가 있다면....... 네가 알아줬으면 해.

 

비안틴 : .......네가 모든 것을 바쳐 누군가를 구하려고 할 때, 누군가는 이렇게 너를 구하려고 했다는 걸.

 

비안틴 : 이렇게...... 너 한 사람만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걸.

 

 

목소리는 어둠 속에 잠겨간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귀걸이, 그 안에 박혀있던 붉은 색의 보석은 눈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 4번 단서 ]

시가지에서 기묘한 광경을 보고 난 뒤, 나는 오랜 침묵에 빠졌다.....
기이한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귀걸이는 무거웠다. 이것은..... 그의 눈일까......
신경은 연결되지 않을 텐데도, 어째서인지 비안틴의 고통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앞서 보았던 광경들은 모두 그의 시야에서 보았던 기억이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계획을 준비한걸까.....
진심으로 신뢰하는 친구조차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너를 다시 믿어도 되는 걸까?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뒤엉켰다. 왼쪽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핏빛 보석의 귀걸이는 낯선 풍경을 보여주었다. 얼핏 엿본 그것은 과거에 존재하는 현실인가, 아니면 거짓된 꿈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내 기억일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일까?

 

 

 

 

 

 

 

▷ 3일차 밤 스토리는 없습니다.

2일차로 이어집니다.

'메인 루트 > 난서의 대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물의 심장, 1일차  (0) 2021.03.25
괴물의 심장, 2일차  (0) 2021.03.25
괴물의 심장, 4일차  (0) 2021.03.25
환상의 색채 속, 엔딩  (0) 2021.03.25
환상의 색채 속, 1일차  (0) 2021.03.25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