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꿈.
공허함과 파멸이 겹쳐진다. 또 그 풍경이다.
누군가 그곳에 누워있는 것 같다. 어떤 거대한 존재가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 ......거기 누구 있어?
》 잡아보자.
??? : .......!!
??? : 너.... 내가 보이는 거야?
??? : 분명 아무도 날 볼 수 없고,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텐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을까, 이런 적은 처음이야......
??? : 잠시만, 잠들지 마, 죽지 마! 이렇게 가버리면, 나는 또―
풍경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또 오랜 시간이 흐른 듯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 다려― 지마―
「세계 재구성..........」
??? : 알고 있어. 처음부터 그랬지. 이건 네 몫이니까....... 이걸로 끝인가.
??? : .........
??? : 한 가지만 물어볼게.
??? :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
「세계 재구성......... 시작」
4일차 아침, 성스러운 별 교회
식당으로 나와 혼자 아침을 먹었다.
오늘 리리코를 만나면 그 사진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그럼 비안틴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에 갑자기 힐다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리리코와 연락이 안 돼. 그 애는 매주 이 시간에 내게 정기 보고를 하고 있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리리코가 사는 곳은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아. 주소를 보낼테니까 무슨 일인지 가서 확인 좀 해봐.
.......리리코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설마 그 사진에 찍힌 게 정말 그 애일까?
일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리리코의 안전을 위해 서둘러야 한다!
4일차 아침, 고등학교 구역
리리코 : .........
외진 곳에 있는 호숫가는 으슥하고 고요했다. 리리코는 이젤 앞에 앉아 호숫가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핏기없이 망연자실했다. 온몸을 휘감은 성채는 마치 편지를 토해내듯 몸을 부풀렸다가 수축시키길 반복하고 있었다.
리리코 뒷쪽의 풀밭에는 세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이미 용모를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사지를 뜯긴 시체들은 인형처럼 바닥에 누워 있다. 새빨간 피가 풀밭을 붉게 적셨다.
리리코는 그들을 등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성채가 갑자기 팽창하며, 세 구의 시체를 모두 집어삼켰다.
아름다운 색채를 가진 그 유연한 생물은 바닥에 흩어진 인간의 잔해를 휘감았다. 사냥감을 잡은 비단뱀처럼 몸을 꿈틀거리고 있다.
시체들은 순식간에 색채를 잃고 마른 고목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 보도되었던 것과 똑같이 변해버린 모습이다.....
견디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고요함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성채의 머리가 이쪽을 돌아봤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시야에 기이한 색채가 빠르게 번져나간다―
비안틴 : ......시에나!!
비안틴이 갑자기 뒷쪽 오솔길을 박차고 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성채는 충격을 받아 잠시 뒤로 물러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위협적으로 덮쳐왔다.
비안틴 : 네가 몰래 나오는 걸 보고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몰래 따라왔어.
비안틴 : 지금 저 애의 자의식은 혼란에 잠겨있을거야...... 일단은 깨우는 것부터 해야 해. 지원을 부탁할게, 시에나!
비안틴 : 젠장, 너무 강해....... 너, 설마 그 녀석을 만난거야?
리리코 : ........!!
큰 자극을 받기라도 한 것인지, 환상을 닮은 색채가 높은 허공으로 솟아올라 마치 커튼을 치듯 사방을 포위했다.
색채로 환상을 표현하듯 눈동자에 비치는 모든 것이 오색찬란한 빛으로 밝게 빛났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시 아찔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비안틴 : 역시 그 녀석을 만난거지. 이건 그 사람의 힘이야. 그는 너를 철저하게 괴물로 만들 속셈이야!
리리코 : 나.... 나는..... 아니에요.......
비안틴 : 성체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잖아. 성채가 네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해서 폭주하고 있어. 며칠 전 보도된 기괴한 살인 사건은 역시 네가 저지른 일이었구나........
리리코 : 아니에요, 제가 지나갔을 때...... 그 사람들은 이미....... 성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진범의 손에....... 진범에게, 살해당한거에요!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진짜 '괴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괴물은―
》 눈앞에 있는 성채이다.
비안틴 : 시에나....... 윽.... 너는 어째서......
그의 그림자가 색채 속으로 완전히 삼켜졌고, 흔적조차 없이 녹아들었다.
곧이어, 모든 색이 사라지자 리리코가 힘이 풀린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리리코 : .......성채가....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 진정해.
》 일단 여길 떠나자.
리리코 : 시에나..... 가까이 오지 말아요. 지금의 저는 위험해요.......
리리코 : 제발요.......
그녀는 한 걸음씩 물러서더니, 몸을 돌려 바람처럼 도망쳤다!
지휘사 : 리리코――!
비안틴은 사라졌고...... 리리코는 도망쳤다........
지금 리리코를 놓친다면 실마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
리리코를 쫓아 그녀가 지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공기 중에 먼지와 안료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방의 바닥에는 종이가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제대로 벽에 걸려 있었으나, 화폭에 담긴 내용은 굉장히 기괴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조심스럽게 안쪽의 문을 밀어 열어보자, 리리코가 몸을 웅크린 채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성채의 빛이 그녀의 몸에 아른거렸다.
》 리리코, 진정해. 나야.
리리코 : 시에나...... 왜 온 거에요?
리리코 : 지금의 전 너무 위험하단 말이에요......
시에나 : 나는 네가 일부러 사람을 해친 게 아닐 거라고 믿어. 그리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털어놓았다.
시에나 : 비안틴은 완전히 사라졌어. 다른 사람처럼 색채를 빼앗기고 그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지. 그러니까.......
네가 그를 죽인 게 아닌지도 몰라? 네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닐지도 몰라?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몰라 말은 그저 목구멍에서 맴돌 뿐이었다.
리리코 : 전에는, 그냥 제가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방금 그 호수는 제가 늘 그림을 그리러 가던 곳이에요.
리리코 : 거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노신사 한 분이 계셨거든요. 가끔씩 고향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에 대한 소감을 나누기도 하면서 감상에 젖는 날도 있었는데.
리리코 : 그 분은 계속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계셨어요. 설산의 풍경이었는데, 저는 할아버지가 이 그림을 완성하는 게 정말 기대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리리코 : 나흘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정상이었어요. 전 그날 밤에, 꿈에서 또 한 번 그 분께 그림이 어서 완성되었으면 한다고 말했구요.
리리코 : 그 다음 날 제가 호숫가에 갔을 때, 그 분은 여전히 거기 계셨어요. 계속 그림을 그렸죠. 쉬지도, 멈추지도 않고......
리리코 : 잠들지도 않았어요. 그저 그 그림만을 바라보면서 붓을 휘두르시는 거에요......
》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리리코 : 결국 그 그림을 완성하셨어요. 모든 힘이 빠진 사람처럼, 힘 없이 땅 위에 주저앉으셨죠.
리리코 : 성채가..... 아무래도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잔뜩 흥분했던 걸 보면, 아마 그 그림을 고향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리리코 : 그러더니 성채가, 성채가....... 무작정 달려들었어요. 할아버지의 얼굴에 달려들더니, 그 그림과 할아버지를 모두......
리리코는 고통스러운 듯 제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얼굴색은 핏기를 잃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리리코 : 기억났어요. 그때부터 성채는 계속 불안해했고, 너무 심하게.... 배고파했죠. 지금까지 썼던 방법들은 전혀 통하지가 않았어요.
리리코 : 그래요. 전 이제 성채를 통제할 수 없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 교회에 도움을 청해 보자.
리리코 : 아, 안 돼요. 교회엔 그게 있어서....... 무섭단 말이에요....... 무서운 눈을 가진.... 그건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그저 사라졌을 뿐이에요.
시에나 : 그러니까 네 말은..... 비안틴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거야?
》 힐다에게 도움을 청해 보자.
리리코 : 아, 안 돼요. 힐다 언니는..... 인간을 죽인 괴물이 살아남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아요.......
리리코는 고개를 들어 화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캔버스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을 따라 주위를 살펴보니, 이 주변에 있는 화폭은 모두 최근에 그려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직후, 리리코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우측의 이젤 위에서 캔버스 하나를 내려 내게 보여주었다.
그림에는 백색의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몸의 색채 덩어리가 캔버스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리리코 : 예전에 제가 몰래 교회에 갔을 때, 비안틴을 봤어요.
리리코 : 저는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을 그리려고 해 봤지만, 어떻게 그려도 이런 모습이.......
하얀 괴물의 커다란 머리에 박힌 눈이 말 없이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유없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에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그림의 뒷면에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흐릿하게 남아있는 한 줄의 숫자를 발견하였다.
》 이 숫자는 뭐야?
리리코 : 이건 제가 무의식적으로 쓴 것 같은데...... 하지만 제가 알기론, 아마도 단말기 번호일 거에요.
리리코 : 시에나, 절 도와줄 수 있을까요?
리리코 : 오늘 밤까지는 이 번호에 관해서 묻지 말아주세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리리코 : 그 전까지는 교회로 돌아가지 말아주세요. 여기서 저와 함께 있어줘요. 제발 부탁이에요.......
리리코 : 당신이 곁에 있을 때, 성채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아서 그래요. 저는, 저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리리코 : 하루면 충분해요...... 내일 반드시 제가........
리리코가 얼굴을 감싸고 작게 울음을 터트렸다.
시에나 : 하지만 힐다가 아침에 내게 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널 찾으러 온 거야.
리리코 : 맞다, 오늘 정기 보고 하는 날이었는데.......
리리코 : 제, 제가 지금 바로 연락할게요! 시에나, 만약 힐다 언니가 이 일에 대해 물어보면 꼭 비밀로 해 주세요......
리리코는 벌벌 떨면서 자신의 단말기를 들고 느릿느릿 키패드를 두드렸다.
리리코 : 지휘사, 저 조금만 자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리리코 : 만약 제가 나가고 싶다고 하면 저를 꼭 막아 주셔야 해요. 때려도 괜찮아요! 묶어 둬도 괜찮으니까!
리리코 : .......꼭 좀 부탁할게요.
소녀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문도 닫지 않은 채로, 온 몸을 이불로 휘감았다.
리리코의 행동은 극도로 부자연스러웠지만, 커튼을 올려둔 것은 성채가 두렵기 때문이겠지.
비안틴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정말 그 그림 속의 모습인걸까?
지금은 리리코의 곁을 지키고, 단말기를 이용해 세츠에게 당분간 교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연락을 남기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비안틴의 묘연한 행방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두었지만, 당연하게도 리리코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었다.
리리코가 말했던 것처럼, 내일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리리코는 성채의 힘을 제어하지 못했고, 성채는 비안틴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삼켜 버렸다.
두려움, 미안함, 당혹스러움과 불안감...... 그것과 직면한 리리코를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까?
4일차 밤 - 고등학교 구역
리리코의 집 소파에서 눈을 붙이다 반쯤 깨어났을 때, 갑자기 무언가가 내 손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기이한 색채였다.
시에나 : ......!!
성채다.
코끝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부유한다. 마치.....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성채 : ――――
흐릿하고 일그러진 색채에서 시각 기관이라 불릴 만한 부분을 구분해낼 수는 없었지만, 꿰뚫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성채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서서히 멀어지더니 주위에 늘어선 화폭 사이로 몸을 숨겼다.
시에나 : 하아....... 하........
뻣뻣하게 굳은 몸을 서서히 움직일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손의 주인을 바라볼 여유를 되찾았다.
리리코가 소파 옆에 기대어 있었고, 오른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 쪽은 리리코가 그림을 그리던 손이다.
맞닿은 손이 이따금씩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다. 리리코는 꼭 눈을 가린 채로, 불안함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다시는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이 한밤중에 화구를 집어들었을 것이다.
》 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 손을 맞잡는다.
성채는 리리코가 말한 것처럼 이미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니 내일이 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리리코가 거부하더라도 보고해야겠지. 교회에도, 힐다에게도.
성채를 제어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는 절대 리리코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일일 보고
리리코 : 저와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일찍 쉬세요.
▷ 엔딩, 〈환상의 색채 속〉 진입.
3일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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