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꿈.
??? : 나야. 저번에 만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구나.
??? : 나는 또 무언가를 알게 됐어. 정보, 과거, 비밀같은 것들을....... 어쩌면 언젠가 너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 :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네게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있는 것들을, 대체 어떻게 하면.......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노이즈가 끼고 산산조각난다.
??? : 아직도 희망을..... 정신...... 점차....... 본래의.......
??? : .....너는..... 질투가 나.........
5일차 아침, 성스러운 별 교회.
시에나 : ........!
또 다시 기묘한 꿈에서 깨어났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창 밖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똑, 똑똑.
또 창문에서 무슨 소리가.......
역시나, 고개를 들어보니 리리코가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이쪽을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리리코 : 시에나― 빨―리―나―와―요―
........무섭다!
리리코 : 미안해요.... 당신이 저를 보지 못한 것 같아서, 다시 창문을 두드렸어요......
리리코 : 남의 집 창문을 두드리는 건 분명 어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리코는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말을 할 때마다 옷자락이 펄럭였다.
리리코 : 힐다 언니.... 그러니까,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다고...... 저를 불러서는 당장 당신을 그 집으로 안내해주라고 했어요. 거긴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아주 중요한 곳이라고도........
》 넌 그들과 어떤 관계야?
리리코 : 그건..... 아주 오래 전에, 힐다 언니와 언니의 동료들이 제 고향을 시찰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저희는 그 때 알게 되었어요.
리리코 : 그 뒤에.... 음.... 여러가지로 복잡한 일이 많이 일어났거든요. 힐다 언니가 절 많이 도와줬구요.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리리코 : 이번엔 언니 쪽에 급한 일이 생겨서 임시 철수해야 할 것 같다고 제게 대신 부탁한 것 같아요.
》 왜 꼭 거기 가야하는 거야?
리리코 : 왜냐하면..... 힐다 언니의 부탁이니까요. 급한 일이 생겼는지 잠시 철수해야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제게 이 일을 부탁한 거에요.
리리코 : 오래 전에, 힐다 언니와 언니의 동료들이 제 고향에 왔을 때 언니랑 처음 만나게 됐어요. 그 후에...... 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언니가 절 여러가지로 도와줬구요......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시에나 : 힐다 언니? 그게 누구야?
리리코 : 언니는 '이수관측협회'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데, 이측회는 이상 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통제하고, 더 나아가 위험 분자를 제거하는 조직이에요.
리리코 : 저는... 얼마 전에 이측회의 위험 명단에...... 올라갔었거든요. 조금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힐다 언니가 제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성채를 제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줬어요.
리리코 : 아, 성채는 제 신기에요― 저는 신기사거든요.
》 너도 신기사야?
》 그릇이 대단하구나.
리리코 : 헤헤..... 하지만 저는 성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힐다 언니랑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절 지켜보고 있는 거구요...... 그 사람들은 성채를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저를 찾아오고 있어요....
리리코 : 아, 이야기가 너무 새버렸네요. 어쨌든, 저와 함께 그 집에 가 주세요. 시에나.
리리코의 이야기에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이 아이를 따라가는 건 도박이다.
그렇지만 어제 밤에 보았던 비안틴의 모습 또한 마음에 걸린다...... 자신은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비안틴에 대한 것은 알고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입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어서,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리리코를 따라 그곳에 가야 할까?
》 기회는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잖아.
시에나 : 좋아. 그렇지만 가기 전에 연락을 남기게 해 줘. 그렇지 않으면 비안틴과 세츠 신관이 내가 사라진 줄 알고 걱정할거야.
리리코 : 그럼..... 저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준비가 다 되면 저를 불러주세요.
돌아서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어떤 말을 적어야 할까?
》 나가서 세츠 신관이 고양이 찾는 걸 도와주고 올게.
어제 마침 어떤 할머니께서 교회에 오셔서 이런 부탁을 하시는 걸 봤으니 변명거리로는 적당한 것 같기도 하고.....
》 나가서 조깅 좀 하고 올게.
너무 이른 시간인가...? 몰라, 이미 써 버렸다!
》 이측회의 흔적을 발견했어. 살펴보고 올게.
그래도 이건 거의 대부분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비안틴이 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 됐다. 이제 구 시가지로 가자.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끝나길 바란다........
리리코 : .....아, 이 주소는 구 시가지 인가요? 어서 가요. 그렇지 않으면 힐다 언니가 또 재촉할거에요.
힐다와 약속했던 날이 바로 오늘이다. 지체하지 말고 구 시가지를 순찰하자.
가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힐다라는 여성의 말에 의하면 비안틴은 약간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를 믿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 걸까.
아무튼, 일단은 구 시가지로 가서 그녀를 만나보자.
5일차, 구 시가지 순찰 - 비안틴의 비밀.
목적지는 구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산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홀로 산 그림자에 숨어있는 외딴 집이다.
까만 지붕과 흰 벽은 약간 잿빛이 돌았고, 문 앞에 세워진 명패는 이미 흐릿해진지 오래였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글자 몇 개는 아마도 집 주인의 이름이겠지.
리리코 : 콜록.... 콜록! 이상한 냄새가 나요.
리리코 : 온 집안에 먼지 냄새며 비린내가 나고 있어요. 그렇지만 눈에 띄게 이상한 물건은 보이지 않네요.
리리코 : 힐다 언니...... 대체 뭘 찾으라고 한 걸까...... 일단 한 번 뭐라도 조사해볼게요.
º 접경도시 관광지도
책상 위에 늘어진 촛불 옆에는 낡은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리리코 : 아, 이건 접경도시의 관광지도에요. 지도에 표시된 장소가 많은데, 예전에 여기 살던 사람은 접경도시를 여행하고 싶어했던걸까요?
리리코 : '공중 회전 레스토랑' ......예전에 화랑의 사장님과 함께 예술품 수집가를 만나러 갔을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어요........
리리코 : 그곳 요리들은 전부 다 맛있었어요. 팥빵이나 토스트보다 훨씬 더......
리리코 : 무, 물론 저는 팥빵이랑 토스트로 충분해요! 돈은 더 중요한 다른 일에 써야 하는걸요!
》 언젠가 같이 가자.
》 나중에 내가 사줄게.
리리코 : 저, 정말요? 그렇지만 정말로 비싸요......
시에나 : 비안틴 일이 전부 해결되면 나도 일자리를 구할거야.
리리코 : 네! 감사해요, 같이 가기로 약속해요.
º 의미불명의 종이
리리코 : 정말로..... 이걸 펴 봐야 할까요..... 너무 더러운데.......
》 맡겨줘!
》 (뒤져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에서 종이 뭉치를 찾아내 펼쳐보니, 상단에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리리코 : 이 위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리리코 : 으...... 냄새!
종이의 냄새를 맡은 리리코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리리코 : 1, 2, 3...... 30자리까지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리리코 : 모르겠어요.... 제가 이걸 찍어서 힐다 언니에게 보낼게요. 언니라면 분명 알고 있을 거에요. 이 종이 뭉치는........
리리코는 비린내가 심하게 나는 종이뭉치를 난처하게 바라보며, 손을 뻗길 주저했다.
》 일단 내가 맡아둘게.
리리코 : 네, 네에.
역겨움을 참고 종이를 잘 추스려 주머니에 넣었다.
º 잠겨있는 문
리리코 : 이 문은..... 열 수 없게 되어있는 것 같아요. 응? 자세히 보니까 문 위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어두컴컴한 등불 아래 새겨진 익숙한 문장은 결코 뚜렷하지 않다.
리리코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고 있는 힘껏 밀었지만, 굳게 닫힌 나무 문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리리코 : 앗!
리리코 : 시에나, 빨리 여길 봐 줘요. 열쇠가 자물쇠에 끼인 채로 부러져버린 것 같아요. 어쩐지 열리지 않더라니.....
리리코 : 문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예감이 안 좋아요........
리리코 : 시에나, 일단은 이 방에서 계속 단서를 찾아봐요... 다른 걸 더 찾을 수 없을 때 들어가도 늦지 않을 거에요......
º 바닥의 얼룩
리리코 : 이건.......
리리코가 몸을 굽혀 바닥의 얼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리리코 : 어떤 액체가 말라버린 뒤에 남은 흔적 같은데...... 면적이 넓네요. 저 문 뒤에서 새어나온 모양이에요.
리리코 : 아. 문틈으로 안쪽을 볼 수 있을지도.......
리리코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완전히 붙였다. 아래쪽의 문틈으로 안쪽 방의 상태를 보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자세를 바꾸어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리리코는 벌떡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리리코 :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런데...... 시에나.......
》 그런데?
리리코 : 그 얼룩 가까이에 있을 때....... 녹슨 것 같기도 하고 비린내 같기도 한 냄새가 났어요........
º 서랍장 속 망치
텅 빈 서랍장 속에는 망치 한 자루만 들어있었다.
리리코 : 이건......
리리코 : 우와아앗!!!!
리리코는 망치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망치 끝이 손잡이에서 떨어져 마루를 세게 내리쳤다.
리리코 : 까, 깜짝이야......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마루도 괜찮죠? 죄송해요..... 제가 늘 이렇게 조심하지 않아서....
》 신경쓰지 마.
》 조심해야지.
망치 머리를 손잡이에 다시 끼워서 바닥에 두어번 세게 내리쳐 단단히 고정시켰다.
리리코 :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분명한데...... 망치 한 자루만 남아있다니....... 왠지 모르게 누군가 일부러 놓아둔 것 같아요.......
비록 어디다 써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망치를 주워서 챙겼다. 갑작스럽게 사고가 생기게 되면 호신용으로라도 쓸 수 있겠지.......
단서 수집
º 말라붙은 액체. 다른 방에서 흘러나온 모양이다.
º 뒤집힌 쓰레기통에서 꺼낸 종이 뭉치. 이상하게 퀴퀴한 냄새가 난다. 펼쳐진 종이 위에는 의미가 불분명한 숫자기 길게 적혀 있다.
º 서랍장에서 찾은 망치 한 자루. 예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것일까? 가져가자, 어쩌면 어딘가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º 안쪽에서 문을 잠근 것 같다. 문에는 낯익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º 접경도시의 관광 지도. 접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다. 몇 군데에 기호를 표시해 두었는데, 나중에 다시 그어진 듯 했고 구두점도 추가되어 있었다.
리리코 : 시에나, 여기서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다 찾은 것 같아요...... 저 문 하나만 남았어요.
리리코 : 열지 않을 수는 없는 거겠죠...... 그렇지만 어떻게 열어야 하지.....?
리리코 : 음, 성채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까부터 상태가 조금 이상해서, 조금 걱정돼요......
시에나 : 방금 찾은 이 망치로 부숴볼게.
리리코 : 아, 조심해요 시에나. 다치면 안 돼요.....
》 박살내자!
》 힘이여 기적을 보여라―!
망치로 자물쇠를 세게 내리쳤다. 오랜 시간 관리며 수리를 하지 않아서인지 문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쉽게 열렸다.
리리코 : 콜록..... 너무 어둡고...... 이상한 냄새가 나지만..... 무섭지 않아..... 하나도 무섭지 않아......
리리코 : 들어가봐요! 성채가 분명 우리를 지켜줄거에요!
문이 열리자, 시체가 썩어가는 것만 같은 지독한 냄새가 덮쳐왔다.
눈앞에 지옥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좁다란 방의 내부는 썩은 피와 살갗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했고, 벽에는 기이하고 괴상한 문장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방 안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다.
피와 살.
피와 살. 부패한 냄새. 발자국. 인간의 뼈. 피와 살. 피와 살. 피와 살. 피와 살. 야만적인. 피와 살.
사방에 인간의 뼈와 잔해, 시체가 흩뿌려져있었다―
뼈의 형태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모조리 씹힌 것만 같다. 난도질된 살점과 피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 더 이상 못 보겠어.....
》 리리코를 데리고 나가자.
그와 동시에, 리리코의 주머니 속에 있던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울림이 들려왔다.
리리코 : .....아.... 아.... 아......
그녀는 꿈에서 막 깨어난 듯 허둥지둥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손을 심하게 떨어서 단말기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리리코는 도움을 구하는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른 손을 뻗어 리리코의 단말기를 잡고, 대신 전화를 받았다.
??? : 응?
단말기 너머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어딘지 기계음을 닮았다.
??? : 시간을 충분히 줬으니 당신들도 그 광경을 봤겠지. 일단 리리코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걔한테 이런 걸 너무 오래 보여줄 수는 없거든. 그 다음에 유익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나는 힐다라고 해.
리리코는 소파에 앉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자신의 공황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다.
힐다 : 우린 전에 만난 적이 있었지. 만약 비안틴이 당신 앞에 뛰어들어 대신 총을 맞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이 이상 고민할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야.
힐다 : 흑관은 전멸. 모두 그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지. 하지만 잽싸게 몸을 뺀 쥐새끼가 두 마리나 있더군.
힐다 : 나는 시작과 끝 없이 일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먼저 당신을 찾아가 예의 바르게 이야기를 하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강경한 조치를 취하려고 했어.
》 그 무차별적인 몰살이......
》 대체 어디가 예의 바르다는거야?
힐다 : 깨끗한 시트 속으로 징그러운 벌레가 기어들어가는 걸 봤다면 그대로 쓰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잖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깨끗하게 만드려고 하겠지.
힐다 : 이측회 사람들은 다소 결벽증 비슷한 면이 있으니, 아무쪼록 양해해 주면 고맙겠어.
힐다 : 결벽증에 대해 논하자면, 그래서 비안틴의 방을 둘러본 소감은 어때?
시에나 : 여기가 비안틴의 방이라고?!
힐다 : 글쎄. 적어도 비안틴은 우리가 만나기 바로 전날까지 거기서 살고 있었어.
힐다 : 당신도 봤겠지만, 거기서 벌어진 참극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 방에서는 분명히 이변이 일어났어.
힐다 :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 뼈와 시체는 비안틴의 실험 대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비안틴 본인일 수도 있어.
》 비안틴은 아직 멀쩡히 살아 있거든.
힐다 : 하, 과연 그가 진짜 비안틴일까?
》 비안틴..... 본인이라고?
힐다 : 당신이 만난 비안틴은 과연 진짜 비안틴일까?
비안틴 : .........
비안틴 : 나는 '내'가 아니야.
시에나 : .......!
힐다 : 뭔가 생각난 모양이군.
힐다 : 우리는 함부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지만, 사람의 겉가죽을 뒤집어쓸 수 있는 괴물이 없는 건 아니야. 내 말 알아들었어?
힐다 : 비안틴은 아마도 '인간이 아니야'. 살고 싶다면 내 말을 듣는 게 좋을거야.
》 내게 뭘 원하는거야?
》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해?
힐다 : 당신이 만약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서 비안틴의 손에 죽게 되겠지. 내가 다른 사람 목숨을 가지고 농담 따먹기나 할 사람으로 보여?
힐다 : 나는 감히 그러지 못해. 그러니까 순순히 내 조언 들어.
힐다 : 나도 당신에게 위험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어. 비안틴이 매일 뭘 하는지,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만 내게 알려주면 돼. 나는 걔가 뭘 했는지가 아니라 뭘 하려는지 궁금한거니까.
힐다 : 당신은 상냥하게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똑똑히 봤거든..... 그 놈의 눈 속에 숨김 없이 넘쳐 흘렀던 악의를 말이야.
힐다 : 나는 이측회가 가지고 있는 비안틴의 정보를 본 적이 있어. 그와 당신 옆에 있는 그것의 행동 패턴은 너무나도 달라. 흑관의 광신도가 다른 신자들을 팔아넘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힐다 : 그는 비안틴이 아니야. 그렇다면 질문이 달라지지. 그건 과연 '무엇'...... 일까?
단말기 너머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힐다 : 성스러운 별 본 교회에서도 흑관이 연루된 소동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아마도 그와 연관이 있겠지..... 새 녀석들에게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해야겠군.
힐다 : 지금 당장 정보를 캘 수 있는 건 그 방 벽에 새겨놓은 문장뿐이야. 그건 내가 이미 이측회의 전문가에게 분석을 요청했지만,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힐다 : 이건 내 단말기 번호야. 새로 알아낸 게 생기면 연락할게.
통신이 종료되었다.
리리코 : 통화...... 끝난 건가요, 시에나?
고개를 끄덕이며, 리리코에게 단말기를 돌려주었다.
리리코 : 저어..... 힐다 언니의 말씨가 다소 무례하긴 하지만,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리리코 :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저도 굉장히 상냥하게 대해주거든요.......
》 리리코랑 힐다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리리코 : .......그게, 제 곁에 있는 이건 성채라고 해요. 이측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변을 일으킨 생물이죠.
리리코 : 제 고향 마을은 성채 때문에 사라졌어요. 그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이측회에서 파견했던 사람이 힐다 언니와, 언니의 동료 두 명이었거든요.
리리코 : 그렇지만 그들은 제가 성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갔어요. 저를 위협하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리리코 : 그 후에 저는 성채와 접경도시에 오게 되었구요......
리리코 : 제가 궁지에 몰렸을 때, 중앙청의 앙투아네트 씨가 저를 발견하고 접경도시의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리리코 : 성채 때문에 수업을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저는 기뻤어요. 사실, 힐다 언니는 이측회에 대한 이야기를 접경도시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제게 당부했어요. 이측회가 다른 조직과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요.
리리코 : 그 뒤로 저는 힐다 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성체를 제어하고, 정기적으로 근황을 보고하고 있어요.
리리코 : 보고할 때를 제외하고는 따로 연락하지 않고,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저는 항상 어떻게 해야 언니에게 보답할수 있을지 생각해요.
리리코 : 사실 예전의 이측회는 지금이랑 많이 달랐어요....... 그런데......
리리코는 잠시 망설였고,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성채가 둥실 떠올랐다. 유동적인 색체가 실내에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니, 왠지 모르게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리리코 : 시에나, 보지 마세요.
리리코 : 다른 사람들이..... 성채를 보는 건 위험해요. 그러니까 보면 안 돼요.
리리코 : 네,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러니까 화실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릴래요. 우리 돌아가요.
리리코 : 헤헤...... 그림은 제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거든요.
리리코 : 성채의 상태는 매일같이 변하고 있어요.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리리코 : 그래서, 저는 종종 수업을 빠지곤 해요.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도 아니구요. 그 덕분에 항상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어요.
리리코 : 손에 쥔 연필 한 자루, 선, 색채, 빛, 물소리...... 암영, 바람, 밀밭..... 오직 이런 것들만이 저를 안심시킬 수 있어요.
리리코 : .....아! 죄송해요. 그림 이야기만 나오면 참지 못하고 쉼 없이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어서.......
》 좀 성가신 버릇이네.
리리코 : 에?! 아..... 아..... 그으......
시에나 : 거짓말이야.
리리코 : 아!
》 그런 리리코도 귀여워.
리리코 : 아, 아앗...... 감사해요......
리리코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눈동자도 계속 지면을 응시했다. 자신이 보인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리리코 : 그럼... 다음에 봐요! 안녕!
리리코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이제 해가 뜨기 전에 성스러운 별 교회로 돌아가자.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막혀있던 방 안의 광경은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통째로 물어뜯긴 것만 같았다. 피 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는 자세히 떠올릴 수조차 없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힐다는 내가 그녀를 도와 비안틴을 감시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의 말대로 행동해야하는 걸까? 비안틴은..... 진짜 그는 어떤 사람인걸까?
5일차, 연구소 토벌
1. 연구소 진입
어두컴컴한 연구소에서 비안틴과 길을 잃었다.
비안틴 : 시에나, 넘어지겠다. 발 밑 조심해.
비안틴 :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연구소가 흑문 사건 이후로 계속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이 남아있어.
비안틴 :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겠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와.
비안틴 : 시에나, 저길 봐. 사람이 있어.
와타리 : 당신들은.... 침입자인가요...... 아빠가 말했어요, 침입자를 막아야 한다고.....
와타리 : 와타리는 아빠의 소원을 이뤄 줘야 해......
비안틴 : ...........
비안틴 : ...........공격해온다. 조심해, 시에나!
2. 잠수함실
비안틴 : '잠수함실'이라. .......아무래도 우리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비안틴 : '비안틴'은 이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해.
비안틴 : 우선 주변을 둘러보자.
뮤아 : 당신들이 바로.... 꿈 속의 악마?
비안틴 : ..........
뮤아 :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또 헷갈려.... 머리가 아파.....
뮤아 : 너희들은 역시 악마야.... 뮤아를 꾀어내려는..... 아빠 말이 맞아.... 너희를 없애버려야 해......
3. 연구소 통로
더그 : 헤헤헤! 이거 새로운 재료야? 빨리 더그에게 줘~
비안틴 : 시에나, 내 곁으로 와. 아무래도 그는 적인 것 같아.
더그 : ........
더그 : 무서워... 이 음식 무서워.... 더그는 필요 없어..... 더그 아빠한테 돌아갈래......
4. 지뇌실
비안틴 : '비안틴'의 기억에 따르면 흑관의 사람이 이 연구소에서 행동한 적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이 앞으로 계속 가 보자.
존 타크 : 감히 내 실엄을 망치다니, 네놈들은 이곳에서 죽어라!
존 타크 : 와타리, 해치워!
와타리 : 네, 아빠.
5. 핵심 통제실
비안틴 : 여기가 핵심 통제실인가봐.
비안틴 : 방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비안틴'의 기억 속에는 없는 사람들이야.
비안틴 :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조심하자.
6. 연구소 중심부
비안틴 : 어떻게 여기에 이런 괴물이 있는거지?
비안틴 : 방금 그 사람들이 가둬 둔 건가.....
비안틴 : 조심해, 시에나. 저게 우리를 봤어.
5일차, 연구소 순찰 - 악마와 영혼 · 중
[ 4번 단서 ]
흑관의 네 번째 의식 장소를 찾았으니 비안틴과 함께 가 보자. 이전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오늘 마저 들을 수 있을까?
네 번째 장소는 접경도시의 해저 연구소에 있었다.
연구소에 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성스러운 별 교회의 명의로 보트를 하나 빌려야 했다.
비안틴 : 여기가 바로 끝에서 두 번째 장소야.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끝나버렸네.
비안틴 : 이제 아르바이트 금액이 꽤 많이 모였어. 너만 괜찮다면, 돌아가는 길에 저번에 봤던 레스토랑에 들러서 식사하고 가자.
비안틴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정리했다. 요즈음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문장의 모양새를 평가하기도 하고, 주변의 풍경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기도 한다.
비안틴 : 지난번 이야기의 후속작― 응, 여기서부터 계속 그려볼까.
비안틴이 펜을 잡았다. 펜촉에서부터 그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인간의 영혼은 땅으로 떨어졌고, 악마는 다시 무료한 삶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은 또 다시 악마의 성에 찾아왔다.
악마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영혼과의 거래를 준비했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영혼은 처음과 똑같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널 놓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악마는 차갑게 말했지만 영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네게 관여하지 않을거야! 네가 아무리 눈물을 흘린다 해도!
악마는 의자에 앉은 채 커다랗게 소리쳤다.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던 영혼은 다시 달음박질쳐 인간 세상으로 돌아갔다.
악마는 영혼이 떠나는 것을 보며 분노했다가, 뒤늦게 실의에 빠졌다.
죽음은 망각을 자아낸다. 악마는 생각했다. 아픔을 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결코 지워낼 수는 없다.
영혼의 고통은 영혼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악마는 점차 영혼에게 연민을 품게 되었다......
처음 만났던 영혼이기 때문이었을까, 악마는 그 낯선 이에게 특별히 너그러웠다.
악마는 그저 외로웠던 것인지도 몰랐으나 영혼이 홀로 이곳을 찾아오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그걸 도와줄 수 없어. 악마는 생각했다. 하지만 약간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겠지.
악마는 다시 한 번 영혼의 소원대로 영혼의 고통을 가져갔고, 영혼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악마는 새로운 삶에 익숙해졌다. 망가진 채로 악마에게 오는 영혼을 어루만지고, 때로 말을 걸기도 했다.
영혼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그것은 즐겁고 행복했다.
악마는 영혼이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 끝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어느 날, 악마는 언제나 그러했듯 영혼의 고통을 덜어냈고 이전처럼 영혼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 순간 , 영혼이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
"우리 언젠가 만난 적이 있지 않아? 너는 누구야?"
악마는 너무 놀랐고, 엄청난 긴장감을 느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악마야. ...아마 그럴 거야.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엔 그런걸. 자기소개를 해야 할까?
악마는 난처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나는 이름이 없는데..... 어떡하지........
악마가 어찌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영혼은 다시금 천천히 이곳을 떠난다.
악마는 생각한다. 다음 번에도 내가 네게 말을 건네겠노라고.
주사위에서 행운의 면을 찾듯. 악마는 영혼이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오길 염원하게 되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몇 번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혼은 악마의 선물을 받고 도망치기만 했던 것을 언제나 미안하게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너를 기억할게! 영혼이 말했다. 똑같은 자기소개를 반복하지 않게 약속해.....
악마가 말한다. 좋아.
비록 영혼이 자신을 기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가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악마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혼은 대부분 고통과 혼란에 빠져 있었고 악마 역시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본래 기다림은 행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혼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기다림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악마는 이제 영혼을 생의 끝에서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살아 숨쉬는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는 발을 내딛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악마는 처음으로 그의 의자에서 일어섰다.
》 악마는...... 영혼을 구하고 싶었던 걸까?
비안틴 : 단언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저 대가를 받아내고 싶은 것인지도 몰라. 어쨌든, 악마의 인생은 정말 무료했으니까.
비안틴 : 너는 어때? 악마가 어리석다고 생각해?
》 고개를 끄덕인다
》 고개를 젓는다
비안틴 : 악마는 자기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건 자신의 선택이었으니까.
비안틴 : 그리고,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고통을 견디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영혼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가치가 있는걸.
비안틴 : 제일 첫 번째의 이야기에서도 말했지. 진심에서 나온 선택이라면, 그 선택이 설령 불행을 가져오더라도.....
비안틴은 벽을 빤히 바라보았다. 벽에 그려진 악마의 그림이 찢어진 커튼 사이로 비쳐보였다. 비안틴의 그림 솜씨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눈앞에 그려진 악마에게서는 한눈에 봐도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안틴 : 다음 문장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자, 수정 작업의 마무리야.
비안틴 :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지. 예약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이제 출발하자. 나머지는 청소 업체에 맡겨도 될거야. .......세츠 신관이 계산서를 받아줄거야.......... 아마도?
[ 4번 단서 ]
비안틴과 보트를 타고 연구소로 이동하여 흑관의 의식 장소를 찾아냈다. 비안틴의 어제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영혼은 지옥을 찾아올 때마다 매번 고통의 소멸을 빌었고, 악마 또한 매번 그 소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영혼이 인간의 생을 되찾을 때마다 악마는 잊혀진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혼의 고통이 사라진 후 그는 악마의 존재를 상기해냈다. "우리 언젠가 만난 적이 있지 않아?" 그것은 틀림없이 그저 우연에 불과했으나, 오랜 시간을 외롭게 살아 온 악마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기쁨이 있기에 슬픔 역시 생겨난다. 악마는 욕망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결국 의자에서 일어섰다――
정말 기이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다려진다.
5일차, 항구 도시 순찰 - 악마와 영혼 · 하
[ 5번 단서 ]
흑관의 다섯 번째 의식 장소를 찾았으니 비안틴과 함께 가 보자. 이번에는 그간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을까?
비안틴 : 서두르지 마― 시에나. 발 밑을 조심해.
비안틴 : 여기 있는 마지막 의식의 흔적이 가장 커. 이 지하도를 전부 덮는 천장에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는 것도 힘들거든.
비안틴 : 어...... 내가 기뻐 보인다고?
비안틴 : 처음부터 기뻤어. 너랑 같이 일하게 되었는걸. 아무래도 시에나는 아직 자신의 매력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네.
비안틴은 눈부시게 웃으며 펜을 꺼내 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안틴 : 여기 그려진 진의 면적이 너무 넓긴 하지만, 이 부분을 중심으로 덧그리기만 하면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괜찮아.
비안틴 : 악마와 영혼의 이야기는 이걸로 마지막이야.
악마는 의자에서 일어섰지만, 사실 좋은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혼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악마는 사실 아주 약했다.
영혼의 고통을 가져갈 수 있던 것은 악마의 마법 덕분이 아니다.
그저 영혼의 고통을 자신에게 옮겼을 뿐이었다. 악마는 본래 고통에 익숙했으므로.
악마는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며 이 긴 전쟁에서 영혼이 어떻게 다쳤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지켜보았다.
악마는 본질적으로 영혼과 다른 존재였고,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악마는 전쟁의 비밀과 모든 신들의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더 많은 것을 알 수록 간담이 서늘해졌다.
악마는 모든 신을,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한다. 영혼을 상처입히고, 떠나갈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저주한다.
전부 부숴버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허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영혼은 분명 괴로워할 것이다.
그렇게 악마는 결심했다. 심연 아래 악마들의 수장을 찾아가자. 나도 이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악마는 신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악마들의 수장이 머무는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났고, 광기어린 음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달빛에 도취된 곤충들은 희미한 빛을 둘러싸고 날개를 펄럭이며 춤을 추었다.
악마는 수장에게 자신도 전쟁에 발을 들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비록 나는 약하지만, 기꺼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그것이 어떤 대가라 하더라도.
나의 아이야. 수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악마를 바라보았다.
악마의 힘은 모두 욕망에서 비롯된단다....... 너 자신을 보렴!
그래, 너는 네가 어떤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악마는 그제서야 자신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몸은 영혼과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천만 번 앗아왔던 영혼의 고통과 절망이 지금의 악마를 만들었다.
나의 욕망? 그는 곤혹스럽게 생각했다. 그건― 아, 알겠다.
나는 영혼을 보고싶어.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단 일주일만이라도―
영혼이 악마의 성에 머무는 5분에 비하면, 일주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비안틴 : ......
》 왜 멈췄어?
》 다 그린거야?
비안틴은 살짝 고개를 들며 웃음소리를 내었다.
비안틴 : 응, 이걸로 끝이야. 악마는 그렇게 전장으로 향했어.
비안틴 : 이 이야기는 당분간 결말이 없을 예정이야. 미안해. 이걸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마지막 장면에 그려진 짐승의 몸 위로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벌레들이 잔뜩 기어다니고 있었다. 벌레 때의 가려진 몸에는 어떠한 기호가 새겨진 것 같았다.
비안틴 : 잘 생각해보고,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줄게.
비안틴 : 이걸로 의식은 전부 처리됐으니 성스러운 별 교회로 돌아가자. 이제 푹 쉴 수 있겠다.
[ 5번 단서 ]
비안틴과 함께 항구 도시의 지하 수로에서 흑관의 기이한 문장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비안틴이 내게 악마와 영혼 이야기의 결말을 들려주었다――
악마는 영혼이 지닌 고통의 근원을 깨끗히 지워버리고자 인간들의 싸움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악마가 영혼의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7일에 불과했지만 5분간의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지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이 기이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정말 비안틴의 작품일 뿐일까?
비밀스럽게 존재하고 있던 흑관의 의식 장소는 모두 정리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흑관에 대한 더 깊은 의구심이 생겨났다.
비안틴이 내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5일차 밤, 성스러운 별 교회.
거실을 지나며 보니, 비안틴이 혼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단말기에는 사진 한 장이 띄워져 있었다. 다소 흐릿했지만 어둠 속에 서 있던 한 소녀가 어디론가 떠나고 있고, 바닥에 누군가가 누워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의 왼쪽 상단에는 기괴한 색채가 비치고 있었지만, 너무 희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비안틴 : 아, 시에나. 우리가 교회에 막 도착해서 통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구 시가지의 의문사에 대해 보도했던 뉴스 기억하고 있어?
비안틴 : 흑관이 활동했던 곳과 우리가 정신을 차렸던 곳이 아주 가까웠거든. 그 인근의 이변은 흑관이 연루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개인적으로 조사해보고 있었어. 기억에 관련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안틴 ; 이 기사에는 댓글이 많이 달려 있는데, 이 사진도 그들 중 한 명에게서 받은 거야.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 했던 걸 보면 이 사진으로 한 몫 벌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비안틴 : 콜록!
비안틴이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 기침하기 시작했다. 심장 근처를 강하게 누르는 손가락이 벌벌 떨리고 있다.
》 왜 그러는 거야?
비안틴 : 아, 아무것도 아니야..... 마저 이야기할게.
비안틴 : 이 사진은 구 시가지의 과일상 주인이 우연히 찍은 거야. 신문 기자인 척 보상금을 미끼로 정보를 좀 수집해왔어.
비안틴 : .......이 사진에 찍힌 여자아이가, 그때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래.
비안틴 :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면, 뉴스에 보도되었던 첫 번째 사망 사건이 일어났던 건― 우리가 구 시가지에서 만나기 하루 전.
비안틴 : 정확한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확인했던 사건 현장은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참혹했어.......
비안틴은 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동자 속에 짙은 걱정이 묻어났다.
비안틴 : 시에나, 구 시가지는..... 너무 위험해. 될 수 있는 한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시에나 : ........응.
문을 나서려고 할 때, 뒷쪽에서 비안틴이 다시 말을 걸었다.
비안틴 : 시에나...... 정말 내게 숨기고 있는 건 없는거지?
비안틴 : 날 믿어 줘......
》 비안틴에게 이측회에 관해 알린다.
비안틴 : .........
비안틴 : 그렇구나.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비안틴 : 네게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 그렇지만 하나만 믿어 줘― 나는 네게 아주 약간의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비안틴 : 네가 무엇을 하든 내가 막을 수는 없지만, 이 이상으로 이측회와 엮이지는 않았으면 해.
비안틴 : 네가 들려준 성채의 이야기대로라면 리리코라는 그 아이와 이 사진 속 여자아이는 동일인물이라고밖에 설명할 할 수 없어.
비안틴 : 만약 꼭 다시 가야 한다면 내가 네 등을 지킬게. 적어도 위험한 순간에 도움이 될 거야.
비안틴 : 힐다의 제안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교회에 온 이후로 남는 시간에는 이스카리오에게 흑관의 정보를 넘기거나 세츠 신관의 일을 돕고....... 아, 네게 줄 과일 냉침을 만들기도 했어.
비안틴 : 그럼― 잘 자. 나머지는 내일 같이 상의해보자.
비안틴 : ........고마워, 시에나.
비안틴 : 좋은 꿈 꿔.
》 숨기는 거 없어.
어둠 속에서 희미한 탄식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비안틴 : 그래...... 그렇구나.
비안틴 : 그럼, 잘 자. 좋은 꿈 꿔.
▷ 1차 엔딩 분기입니다.
비안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경우 2차 엔딩 분기로 이어집니다.
숨길 경우 '환상의 색채 속'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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