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꿈.
모든 것이 구겨지고, 가늘어졌다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 : .........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어렴풋한 빛을 내는 하얀색 뿐이었다.
??? : 나는 이제 여기 혼자 앉아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들을 되풀이하는 게 신물이 나.
??? : 어떻게 하면 네 곁으로 갈 수 있을까?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좋아.
그리고, 세상이 사라졌다.
6일차 아침, 성스러운 별 교회.
세츠 : 정신 차려, 시에나. 정신 좀 차려 봐―
시에나 : ........!
세츠 : 정말이지. 푹 쉬어도 좋다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역시 그다지 안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 잠꼬대도 심하고――
그의 손끝이 비안틴을 가리켰다.
비안틴 : 미안해...... 내 몸도, 내 기억도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할만 한 행동을 할 수도 있거든.....
세츠 : 신경쓰지 마.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너희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
세츠 : 그 녀석의 이름은 이스카리오. 우리 쪽의 고위 인사라고 할 수 있지만, 흑관의 사람이 교회에 몸을 의탁하려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너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 같아.
비안틴 : 흑관 출신은 나야. 시에나는 이 일과 관계 없어.
세츠 :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물론 나도 이미 말해뒀고, 이스카리오도 의례적인 것을 묻고 싶을 뿐이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아직 출장 중이라 대화라고 해도 원격 통신을 이용할거야. 정직하게 이야기해주기만 하면 돼. 그도 널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세츠 : 그럼 난 가서 통신 준비를 좀 해 둘게. 테이블 위에 내가 끓여둔 차랑 간식이 있으니 마음대로 먹어~
세츠는 애매하게 손을 흔들며 문을 닫고 나갔다.
거의 모두 흰색으로 채워진 방 안은 매우 단촐하게 꾸며져 있었다. 유일하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도시의 뉴스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뿐이다.
텔레비전 : 오늘 새벽, 구 시가지의 호수 근처에서 사망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체에는 수분이 남아있지 않았으며 색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유족과의......
비안틴은 그 뉴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비안틴 : 저긴 우리가 머물던 곳인데......
비안틴 : 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비약이야. 저게 '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도 없고..... 그냥 내가 너무 앞서갔는지도 몰라.
비안틴 : 우선은 정신 차리고 이스카리오와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신경써야겠지.
》 이스카리오가 누구야?
비안틴 : 성스러운 별 교회의 추기경― 고위 인사라고 생각하면 돼. 얼마 전에 본 교회에서 접경도시로 파견됐어.
비안틴 : 우수한 성적, 비상한 머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만큼 교회는 그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어. 교회가 이 도시에 내린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깊어.
비안틴 : 흑관에게 있어 상당히 까다로운 적수지. 그는 '나'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흑관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할 거야.
비안틴 : 그러니까...... 네가 내게 말려든거야. 미안해, 시에나.
》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탔잖아.
비안틴 : 아.... 응! 교섭은 내게 맡겨!
》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
비안틴 : 아......
비안틴 : 응, 내가 책임질게. 교섭은 내게 맡겨 줘.
비안틴 : 물론 비안틴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츠 : 오래 기다렸지. 통신이 연결됐어. 준비는 다 끝났어?
비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이 부신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그 순간의 비안틴은 마치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무고한 어린 양처럼 보였다.
이스카리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너무 늦지 않게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면 기쁘겠군요.
이스카리오 : 제 이름은 이스카리오. 성스러운 별 교회의 추기경입니다.
이스카리오 : 세레스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불행한 사고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픈 가여운 이들이라 설명했지만― 저는 교회의 안전을 위해 당신들의 말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카리오 : 기억상실증이란 모호한 표현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연기력만 있다면 어떤 이야기라도 꾸며내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이스카리오 : 교회가 당신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적잖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저희는 적어도 당신들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요함이 깔린 방 안에서는, 오직 이스카리오만이 규칙적으로 느긋하게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비안틴 : 알겠습니다. 제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죠.
비안틴이 한 발짝 걸어나가자, 발자국 소리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덮어버렸다.
비안틴 : 이스카리오 씨, 당신은 성스러운 별 본 교회로 가고 있는 도중이라 알고 있습니다.
비안틴 : 당신을 초청한 앤더슨 주교는 흑관의 사람입니다. 당신과, 동행하는 신관들이 본 교회에 도착하면 곧바로 예사롭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비안틴 : 당신에게 드리는 이 리스트가 제 성의를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군요. .....저희는 지금 성스러운 별 교회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제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비안틴 : 저와 시에나는 단지 비를 피할 것을 원할 뿐입니다. 교회의 처마 끝이라도 충분해요. 안쪽의 깊은 방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스카리오 : 당신은 이렇게 쉽게 제게 동료의 정보를 넘기는 겁니까?
비안틴 :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비안틴'이 아닙니다. 만약 이 정보들로 지금의 제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선택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이스카리오 : 시세를 잘 살피는 것은 확실히 총명한 이들이 선택하는 방법이죠.
이스카리오의 뒷편에서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자, 화면이 꺼지고 그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스카리오 : 저는 당신에게서 받은 리스트의 진위를 검증하러 가야겠군요.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비안틴.
이스카리오 : 다음에는 당신 뒤에 숨어있던 어린 아가씨도 기억을 떠올리길 바라죠.
통신이 종료되었다.
비안틴 : 이스카리오 신관, 난관이었어.....
세츠 ; 괜찮아. 그 녀석은 예전부터 이변을 두고 허풍 떠는 걸 좋아했거든. 어쨌든 전부 지나갔으니, 안심하고 여기 머물러도 돼.
비안틴 : 고마워, 세츠 신관.
세츠 : 하지만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어제 네가 흑관은 이미 접경도시 내부에 들어와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 의식을 행하고 있다고...... 그건 어떤 의식이지?
비안틴 : 미안..... 거기까진 생각이 안 나는데.......
세츠 : 별 것 아닌 일 같지는 않은데, 곤란하게 됐네. 나는 역시 그걸 조사해보고 싶어.
비안틴 : 그렇다면 내게 맡겨 줘! 나도 여기서 가만히 있고 싶진 않아. 얌전히 보호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어.
비안틴 : '비안틴'은 단순히 의식의 집행만을 맡았던 것 같아. 다만 흑관이 그 의식을 위해 빛이 닿지 않는 도시 곳곳에서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다는 건 알고 있어.
비안틴 : 의식은 이미 중단되었지만, 진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어.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
비안틴 :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 곳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부주의하게 다가가면 의식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어. '비안틴' 말고는 의식에 사용된 진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 그러니 내게 맡겨.
세츠 : 뭐? 너 설마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가려는 생각이야?
비안틴 : 아하하, 방금 아주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거든.
비안틴 : 세츠 신관. 교회에 여분의 견습 신관복이나 수녀복이 있을까? 내 생각엔, 성스러운 별 교회의 옷을 입고 있으면 이측회도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못할 것 같은데.
세츠 : 신기하네. 우리 교회의 옷이 이런 일에 쓰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 나도 같이 갈게.
비안틴 : 정말? ....하지만, 너무 위험해. 역시 그만두는 게.......
》 너 혼자 가려고?
비안틴 : 응. 나 혼자면 충분해. 시에나는 여기서 기다려 줘.
시에나 : 만약 또 위험한 일이 닥치면, 그땐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어제 우리가 함께 탈출했던 것처럼.
비안틴 : ..........!
비안틴 : 그럼 같이 가자. 세츠 신관, 아무래도 우리 옷을 두 벌 빌려야 할 것 같은데......
세츠 : 문제 없어, 문제 없어. 옷 두 벌 쯤이야. 평소에는 사람을 구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두 명이나 늘어나서 나도 기뻐!
세츠 : 내 단말기 번호를 줄 테니까,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전화하도록 해.
세츠는 자신의 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를 우리의 가슴 앞주머니에 즐겁게 밀어넣었다.
비안틴은 환하게 웃었다.
비안틴 : 고마워, 세츠 신관. 시에나, 이제 출발하자!
이스카리오를 알게 되었고, 성스러운 별 교회의 추기경인 그는 상당히 대처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다행히도 비안틴이 있어 준 덕분에, 우리가 교회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었다.
흑관, 이측회, 그리고 교회....... 이들 사이엔 대체 어떤 갈등이 있는 걸까?
비안틴은 마지막에 우리가 반드시 흑관의 의식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일이 지체되어선 안 되니 가능한 한 빨리 출발하도록 하자.
6일차, 고등학교 순찰 - 긴 서신
[ 1번 단서 ]
흑관의 첫 번째 의식 장소를 찾았으니 비안틴과 함께 조사하자.
비안틴이 찾아낸 첫 번째 의식 장소는 흑문 피해로 폐교된 학교의 창고 건물이었다. 입구는 이미 폐쇄된 지 오래였지만 측면의 벽에서 내 키의 절반쯤 되는, 기어서 들어갈 수 있을만한 구멍을 찾아냈다.
비안틴 : 콜록콜록..... 먼지가 너무 많아서 옷이 더러워졌어. 아무래도 빌린 옷이니까, 나중에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줘야겠는걸.
비안틴 : 방금 전에 교회의 창고에 가서 보니 정말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 같았지. 세츠 신관이 사람을 못 구하고 있다고 했던 건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심각한 상황인가 봐.
비안틴 : 일이 잘 마무리되면 교회에 계속 머무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 그 옷도 정말 잘 어울려.
》 전망이 괜찮으려나.......
비안틴 : 저, 정말? 그렇지만 네가 옷 고르는 걸 도와줬으니까.......
입구보다 먼지가 적은 창고의 안쪽에는, 깜깜한 구석 한 켠에 쌓여있는 축제용 인형들의 동그란 눈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비안틴은 여전히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고 있었고,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비안틴 : 아, 찾았다. 이 선반의...... 뒷면.
비안틴 : 바로 이거야.......
벽에 그려진 핏빛 문장은 선이 복잡하고 무척 정교하여 거대한 나방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비안틴 : 이걸 직접적으로 파괴할 방법은 없어. 문장을 지운다 해도 물감이 이미 땅에 스며들었으니까.
비안틴 : 그러니까 특수한 방법으로 문장 자체를 수정해서, 문장의 중추를 파괴시겨야 해.....
》 그걸로.... 정말 효과가 있을까?
》 이건 단순한 낙서인 것 같은데.
비안틴 : 음...... 확실히 그냥 낙서처럼 보여. 그렇지만 누군가 이걸 진실이라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해. 그리고, 이런 걸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이니까.
비안틴은 품에서 깃펜을 꺼냈다. 깃털의 끝부분은 불에 그을린 듯한 검은색이고, 펜촉은 순수한 붉은색이었다.
비안틴 : 이건 '비안틴'이 지니고 있던 물건이니, 이걸로 저 문장을 고칠 수 있을 거야.
비안틴 : 시에나, 내 옆에 앉아.
비안틴의 곁에 앉자, 그는 열심히 문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숙련된 화가 같았다.
선명한 붉은 색의 선이 문장을 덮어가고, 차츰차츰 거대한 나방 위로 새로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시에나 : 이건......
비안틴 : 아. 이건...... 어차피 이미 그려진 것을 지워야 한다면, 이 위로 무언가를 덧그리는 게 어떨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보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본 거야.
비안틴 : 아직 어디 내놓을 만한 실력은 못 되니까, 웃지 말아 줘!
》 안 웃을거야.
》 이건 어떤 이야기야?
비안틴 :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야.
비안틴은 벽을 가리켰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어느 청년에게는 편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청년에게 편지로 행복한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평등한 신분과 평등한 교육, 평등하게 살아가며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이상적인 세계일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청년은 매일 편지함에 새 편지가 오는 것을 기대했다.
두 사람의 우정이 계속되던 어느 날,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편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청년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며 친구가 편지를 보내오는 곳애 가 보기로 결정했다.
길을 걷다 보니, 청년을 별을 바라보며 빈번히 꿈에 취해 대지와 시를 보기 시작했고 나방은 달빛을 둘러싸고 춤을 추었다......
밤은 낮보다 길고, 꿈을 꾸는 시간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길며, 꿈속의 오솔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청년은 길 끝에서 하나의 별을 찾아냈다.
친구는 별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편지를 쓰고 있었지만, 편지지가 온통 황야로 뒤덮였다.
청년이 친구를 만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꿈은 그 청년을 괴수처럼 감싸 안으며 향을 피웠다.
그러는 사이, 청년은 친구와 함께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꿈을 꾸었다.
벽화의 내용은 여기서 끝났다.
비안틴 : 시에나.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비안틴 : 청년은 꿈에 잡아먹힐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도 친구를 찾으러 갔을까?
》 나라면 갈 거야.
비안틴 : 아름다운 마음이네..... 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하겠지.
》 어쩌면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비안틴 : 그렇구나, 그것도 네 선택이지.
비안틴 : 어느 쪽이든 진심에서 나온 선택이라면, 청년은 분명 후회하지 않았을 거야.
비안틴 : 됐다. 가장 중요한 문장을 이렇게 망가트려 두면 괜찮을 거야. 이제 이 주변에 있는 물건을 한두 개 가져가면...... 이 장소를 완전히 부술 수 있어.
비안틴 : 이 문장은 이미 평범한 낙서가 됐으니까 일반적인 청소부들도 지울 수 있어.
비안틴 : 그렇지만, 평범한 학생들이 낙서해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글씨라도 좀 써 둘까? 그럴듯하게 "다음 번엔 반드시 100점" 같은 거라던지?
》 "교장 바보" 라고 써 줘.
비안틴 : 좋네. 한 번 해 볼게.
》 "다이너마이트 가방 메고 올까" 는 어때.
비안틴 : ......? 이 말에 속 뜻이 있는거야? 학생들이 항상 책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인걸까?
하하 웃음 소리를 낸 후에 펜을 빌려 벽에 잔뜩 낙서들을 휘갈겼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인형 더미에서 작은 곰인형의 눈을 챙겨 비안틴과 함께 축제 창고를 떠났다.
[ 1번 단서 ]
비안틴과 고등학교 구역을 방문했고, 아니나 다를까 버려진 창고에서 흑관이 사용하는 나방을 닮은 표식을 찾아냈다. 비안틴은 그 문장을 기묘한 벽화로 이야기를 만들어 덮어버렸다――
편지 친구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가, 결국에는 함께 잠들어버린 한 청년의 기묘한 이야기.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6일차, 동방거리 순찰 - 화원
[ 2번 단서 ]
흑관의 두 번째 의식 장소를 찾아냈다. 이제 비안틴과 함께 그리로 가 보자.
오늘은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을까.
나방을 닮은 듯한 암적색 문장이 폐정원의 그림자 속에 새겨져 있었다.
비안틴 : 잔뜩 일그러진 정원이구나. 흑관이 선택할만한 곳이야. 이건 지난 밤에 새긴 것 같네.
비안틴 : 지난번과 똑같이 이걸 고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다행히 내가 방금 간식을 좀 사 왔어.
비안틴 : 자. 이 벤치는 아직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간식을 먹으면서 날 기다려 줘.
》 이번에도 이야기로 덮을거야?
》 뭘 그릴 거야?
비안틴 : 저번에는 좋을 대로 그렸을 뿐이었는데......!
비안틴 : 여기 있는 문장을 그림으로 덮어야 한다면....... 가장 적당한 건....... 마법사와 그녀의 견습생 이야기.
비안틴 : ......하지만, 정말 보고 싶은 거야? 너무 부끄러운데.
그의 펜끝이 복잡한 무늬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씨앗은 마력의 원천이다.
마법사의 밑에서 지식을 배우는 모든 견습생들은, 자신의 씨앗을 이 덕망 높은 스승에게 맡겨야 한다.
스승의 화원에서, 씨앗은 서로 다른 기이한 식물으로 자라나 온 힘을 다해 서로와 겨룬다.
마법사의 제자들 또한 세계 각지로 떠나며, 서로 다른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한 견습생만은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스승을 믿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화원을 지날 때마다 향상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네 씨앗이 아니야." 그 목소리는 비웃듯 말을 건네었다.
"네 씨앗은 이미 빼앗겼어." 견습생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려 했지만, 식사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때도 그 목소리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결국 견습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인적이 드문 밤에 스승의 화원을 찾아갔다.
반복적인 권유는 의혹을 불러온다.
견습생은 손톱이 뒤집히고 살갗이 까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미친 듯이 손으로 흙을 파헤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견습생은 마침내 땅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씨앗을 찾아냈다.
견습생은 안도하여 다시 흙을 덮으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 씨앗은 처음 땅에 묻었을 때와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었다―
그건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한 번 삶아졌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무성하게 자란 견습생의 식물이 시들어 바닥에 쓰러졌다.
마법이 사라졌다.
비안틴 : 만약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견습생은 계속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겠지...... 비록 그게 허황된 것이라 해도 말이야.......
비안틴 : 시에나.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진실을 갈구했을 때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겠어? 아니면 행복한 환각 속에서 살아가는 게 좋을까?
》 나는 진실을 알고 싶어.
》 난 행복을 유지하고 싶어.
비안틴 : 그렇구나......
비안틴 : 저번에도 말했지만 자신의 진심에서 우러난 마음이라면,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것이 불행이라 할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비안틴 : 결국 이 세상도 행복과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비안틴 : 여기 있는 문장도 전부 처리했으니...... 다음 곳으로 갈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비안틴 : 하하, 이젠 알겠다고 말해줄 수 있어. 다음 번에 그릴 이야기를 미리 생각해 둘게.
[ 2번 단서 ]
비안틴과 함께 동방거리로 향했고, 폐원된 정원에서 흑관이 준비했던 의식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번에 비안틴은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마법사의 제자는 진실을 알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름다운 환상을 깨트렸다. 진실을 보기 위해 환상을 벗어나 심연으로 향하는 것은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인걸까?
6일차, 시가지 순찰 - 악마와 영혼 · 상
[ 3번 단서 ]
흑관의 세 번째 의식 장소를 찾아냈다.
이제 비안틴과 함께 가 보자. 오늘은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을까.
세 번째 장소는 시가지다. 비안틴과 함께 문 닫은 스튜디오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몸체에 아직 옷을 걸치고 있는 플라스틱 마네킹은 쇼윈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기도 했고, 이미 쓰러져 길을 가로막듯 통로에 끼어있기도 했다.
비안틴 : 응.....? 여긴 아무래도 세츠 신관이 좋아하는 패션 잡지사같은걸. 저번에 세츠 신관의 작업 파일 정리를 도와줄 때 본 적이 있어.
비안틴 : 아, 시에나에게도 말해줘야지―
비안틴 : 세츠 신관과 약속을 했거든. 한가할 때 그의 밀린 서류 작업을 도와주고 보수를 받기로 했어.
비안틴 : 밀린 서류가 너무 많아서, 조금만 있으면 용돈이 생겨서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비안틴은 그렇게 말하며 길을 가로막고 있는 마네킹들을 옮겼다. 통로 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수납장이 보였다.
수납장의 문에는 작은 문장이 그려져 있었는데, 여전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 이번에는 어떤 그림으로 덮을거야?
》 이번 내용은 조금 적을 수밖에 없을 것 같네.
비안틴 : 아하하, 우리 목적은 절대 이야기를 그리는 게 아닌데 말야...... 그렇지만 시에나가 내 이야기를 보고 기뻐해준다면 나 역시 기쁠거야.
비안틴은 추억에 사로잡힌 듯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살짝 흔들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옛날, 인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며 전쟁을 계속하였고 모든 신 역시 그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만 하는 전쟁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날 겨를도,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도 없었다.
물론 이는 악마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그가 머무는 지옥은 너무나 먼 곳에 있어서 아마 오래 전에 잊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영혼이 불현듯 이곳을 찾아왔다.
악마는 뛸 듯이 기뻐하며, 드디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몇 번이고 되뇌였던 대사를 읊었다.
네 영혼을 내게 줘.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테니.......
그러나 영혼은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고통스럽게 흐느끼며 아픔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이건 별로 좋지 않아. 악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공평한 거래를 원해. 네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어. 그럼 넌 네 영혼을 내게 줄 건가?
그러나 영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고통에 젖어 흐느낄 뿐이었다.
악마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알겠어. 그러나 나겐 줄곧 하나의 원칙이 있어왔어. 네 고통을 약간 가져가지. 다른 건 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하며, 악마는 영혼의 고통을 가져갔다.
악마는 그제서야 영혼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영혼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존재였다.
악마가 말했다. 좋아, 이제 계약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혼은 악마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다고 여긴 듯, 다른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영혼은 아주 잠시 머물렀던 이 비좁은 곳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전투를 계속했다.
악마는 화를 냈다. 너무하잖아! 내 이야기를 듣고 가면 안 되는거야?
그렇지만 악마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악마는 하는 수 없이 화가 난 채로 그 영혼이 인간 세상에서 죽고 죽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안틴 : 음......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다시 생각해 보고, 다음 번에 알려줄게.
》 이번엔 연작이야?!
비안틴 : 여긴 벽면이 좁은걸. 이 정도가 한계야.
거친 펜놀림은 벽면 한 켠에 악마와 그의 곁에 누워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그려냈다. 비안틴은 전문적인 화가가 아니다. 그가 그린 '악마'는 단지 하나의 거대한 색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 그림은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 3번 단서 ]
비안틴과 시가지의 무너진 패션 스튜디오에서 흑관의 의식 흔적을 찾아냈다.
비안틴은 나를 위해 악마와 영혼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끝없는 전쟁에 빠져 환생의 개념을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아무도 악마의 세계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악마는 고통에 빠져 울부짖는 영혼을 마주했다. 영혼은 고통이 사라지길 소망했고, 악마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 직후, 영혼은 빠르게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비안틴이 이 이야기를 완성했을까?
6일차 밤, 성스러운 별 교회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질문 공세를 받다가, 성스러운 별 교회에 겨우 쉴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기억을 모두 잃었지만,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비안틴이 곁에 있었다. 약간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똑똑.
시에나 : ?
똑똑, 똑.
》 무슨 소리지?
》 창문가에서 들리는 건가?
쿵―
소녀 : 와앗!
창문을 여는 순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색채가 나를 스쳐지나가 어둠 속에 숨어 버렸다.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가 바닥에 넘어진 채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소녀 : 아파라아........ 저기, 당신이 시에나 맞나요?
》 넌 누구야?
》 한밤중에 왜 남의 집 창문을 기어오른거야?
소녀 : 역시 여기가 맞구나. 다행이다. 창문을 잘못 찾았다면 큰일이었을텐데.....
리리코 : 미안해요...... 저는 리리코에요. 메, 메신저 같은 건데...... 누군가 당신에게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해왔어요.
소녀는 허둥지둥 몸에 지니고 있던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잔뜩 구겨진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리리코 : 이 편지는 반드시 혼자 보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가 여기 왔었다는 건 비밀로 해 주세요.
리리코 :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리리코는 마치 미리 연습하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말했다. 그러더니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말이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문 밖으로 뛰었다.
》 잠깐......
》 너무 급하게 가는데.......
리리코 : 우아앗―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리코가 다시 한 번 바닥에 넘어졌지만, 큰 소리를 낼까 봐 자신의 입을 가로막았다.
리리코 : 저는 괜찮, 괜찮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녀는 겨우겨우 일어나 다시 한 번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부리나케 떠나버렸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인 것 같다.
의자에 앉아 편지 봉투를 뜯었다. 필체가 편지를 쓴 사람의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안틴은 위험해. 당신이 본 모든 것은 전부 함정이야. 이걸 믿든 믿지 않든 결정은 당신 몫이지.
하지만 만약 당신이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의심이 든다면, 내일 여기 적힌 주소로 나를 만나러 오도록 해.
잊지 마. 당신 주변의 사람은 당신을 수렁으로 처박을 위험한 늪이란 걸.
편지 봉투의 안쪽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뒤집어서 꺼내보니 피가 묻은 열쇠였다. 열쇠고리에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똑똑.
이번에는 누군가가 방 문을 두드렸다.
비안틴 : 시에나, 자려고 누웠어? 간식을 만들어봤는데 좀 먹을래?
비안틴이다― 나도 모르게 편지와 열쇠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비안틴 : 이런, 창문을 왜 이렇게 활짝 열어뒀어. 오늘 밤은 바람이 차서 감기에 걸릴 거야. 내가 닫아줄게.
비안틴은 보온병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가 활짝 열린 창문을 굳게 닫았다.
비안틴 : 자, 이건 내가 만든 백합 연잎 죽인데, 자기 전에 조금 먹어 둬.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으니 편히 잠드는 데 도움이 될 거야.
》 조금 있다가 먹을게.....
비안틴 : 응......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해. 보온병은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식기 전에 먹고 일찍 자. 우린 내일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 간식을 만들 줄 아는구나.
비안틴 : 아하하, 예전에 조금 배워둔 건데 돌아오자마자 만들어 봤어. 그럼 보온병은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식기 전에 먹고 일찍 자. 우린 내일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비안틴 : 그럼 오늘 밤은 더이상 방해하지 않을게. 좋은 꿈 꿔, 시에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며 방 안은 다시 한 번 적막에 잠겼다.
그제서야 주머니에 넣었던 편지가 완전히 구겨져 모양이 변해버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잠깐, 방금 그가 들어오기 전에....... 내가 문을 열어뒀던가......?
리리코라는 이름의 소녀가 내 방을 찾아왔고, 스스로를 이측회에서 보낸 메신저라고 소개했다.
이측회의 힐다는 내게 편지를 보내 비안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내가 그들을 믿어야 할까?
▷ 5일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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