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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 : 지휘사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백야를 지나 깊은 곳에 숨기자~

 

베타 : 지휘사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말썽을 일으키고 재난을 부르지~

 

 

》 .......너희 대체 뭘 부르고 있는 거야?

 

 

꿈결처럼 흥얼거리던 소리가 뚝 그쳤다. 소파 안쪽에서 작은 인형 네 개가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알파 : 자장가 중 하나에요―― 쉿, 아실리아가 낮잠을 자고 있어요.

 

베타 : 다른 사람의 꿈을 방해한다면, 죄가 배로 늘어날거야.

 

지휘사 : 그럼 너희가 좀 도와줄 수 있어?

 

베타 : 안돼~

 

알파 : 안돼요~

 

델타 : 안돼!

 

감마 : 안돼애~

 

시에나 : ....그으래, 알겠어.

 

감마 : 양관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굉장히 많아~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실수로 열어 버리면, 흐릿한 모자이크처럼 변해버릴지도 몰라~

 

알파 : 시에나를 위협하지 마. 그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자~

 

감마 : 이런, 뭘 만져봤자 좋을 게 없을텐데. 너희 기어이 그 피아노를 만져야 성이 풀리겠어?

 

카지 : 우왓, 정말 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모두에게 그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프로그램비둘기 : 실례, 내가 좀 볼게. 정말 망가진건지 확언하긴 어려워.

 

카지 : 에에에? 버그인것 같으면 자동으로 나오는 거야?

 

 

비둘기들이 어느 사이엔가 몰려와서 구구구 울음소리를 냈다. 인형들은 잇달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베타 : 불청객들아. 이건 양관의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야.

 

프로그램비둘기 : 잠깐. 기지 넘치는 나는 진작 알아차렸지만, 양관 안에서의 시간은 바깥과 달라.

 

알파 : 그건 이곳 자체가 신기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프로그램비둘기 : 신기라는 건 몰랐어. 그냥 난 여기가 게임 안과 아주 흡사하다는 걸 알았을 뿐이야―― 우리의 체험은 어떤 존재가 우리에게 준 「감각」에서 나오거든. 쉽게 비유하자면 게임 엔진이 장면 모형 데이터를 근거로 게임을 구성하는 거랑 같은 맥락이지.

 

프로그램비둘기 : 나는 '우연히' 바비큐 그릴을 봤고, 카지 양은 '우연히' 피아노를 봤고, 당신들은 '우연히' 나타난거겠지만... 매 순간은 정확한 계산 속에 있는 거야.

 

알파 : 첫 번째 방응의 소스 코드를 찾아본 건가요?

 

프로그램비둘기 : 만약 양관이 무한에 가까운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현실의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거야.

 

프로그램비둘기 :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양관이 시뮬레이션한 「가상 실체」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그 피아노도 진짜 피아노가 아닐거야!

 

베타 : 멋지네. 한 가지만 빼고. 피아노는 진짜고, 양관도 진짜야.

 

베타 : 내가 지금 널 한 대 때린다면 네가 받게 될 타격도 HP의 감소가 아니라 실제적인 육체적 손상이겠지.

 

프로그램 비둘기 : 그럼 우리가 지금 게임 속에 있는 게 아니란 말야?!

 

시에나 : 그 실망한 말투는 대체 뭐야! 그리고 그런 억측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데!

 

알파 : 피아노는 양관 주인의 소중한 물건이기도 하고, 자유섬에서 온 오래된 악기이기도 해요. 천상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동시에 환력을 통해 멀리 떨어진 고향과 연결되어있어요.

 

알파 : 일단 봉인을 깨트리면, 그것과 이상향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겠죠.

 

시에나 : 봉인이라는 건, 피아노의 금실을 말하는거야?

 

알파 : 흠흠.

 

시에나 : 환력으로 버티고 있다면, 내가 수리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카지 : 부탁해, 시에나! 

 

 

피아노를 향해 손을 뻗어 허공에 존재하는 환력의 흔적을 느끼려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끝에서부터 평소와는 다른 온기가 어렴풋하게 전해져 왔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작은 입자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금빛으로 얼룩진 반짝이는 조각들이 미세하게 흩어졌고, 그 흔적이 피아노의 몸체 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지 : 너무 좋다! 그런데, 이 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게아노르 : 내 곡검 하르페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구나.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금빛 실을 힘껏 제자리로 끌어올렸다. 

피아노의 뚜껑 위로 대강의 형상이 조금씩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게아노르 : 몇 단락은 너무 깊이 떨어져 있어서, 검을 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기계 장치의 전동부 부품은 아주 민감하지.

 

게아노르 : 시에나, 무리한 부탁을 해도 괜찮겠니. 나는 이 봉인을 깨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이 피아노의 완전함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게아노르 : 어쨌든, 이건 아주 진귀한 보물이니까.

 

 

》 지금이 그럴 땐가요.

》 최선을 다해볼게요.

 

 

곡검의 날카로운 끝이 잘게 떨리며 덮개 아래로 꽂혀들어갔다......

피아노의 줄 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갑작스럽게 손끝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시에나 : 윽――!

 

프로그램비둘기 : 위험해 보이는데! 잠행을 신청해도 될까?

 

에뮤사 : 안돼! 이건 무수히 많은 혈관을 지나서 심장의 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이치야. 떨리는 게 정상이라구.

 

게아노르 : 그렇다면, 맡겨주렴.

 

 

게아노르는 사브르를 가벼운 손짓으로 받아냈다.

그의 날렵하고 부드러운 손끝 아래서, 비문이 점점 제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밝은 하얀 빛이 덮쳐왔다......

 

 


 

 

 

 

거울처럼 푸르른 하늘 위에 한 가락 희뿌연 안개가 실체 없이 흩어져 있었다.

게아노르의 엷은 그림자가 해수면 위에 홀로 서 있다.

 

 

??? : 당신은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아닌데.

 

게아노르 : 모두들 생기 넘치는 소년 소녀를 보고 싶어하겠지. 백발의 노인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걸 이미 할고 있네. 그래도, 나는 이곳에 왔지.

 

게아노르 : 자네는 시에나만이 풀 수 있는 수수께끼를 남겼더군. 그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인가?

 

??? : 그저 요양해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 뿐이야....... 듣자하니 당신들이 내 집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곳이 이렇게 떠들썩했던 것도 아주 오래 전이었으니까.

 

??? : 나는 당신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어. 당신이 방금 내 피아노를 보존해주려 노력했던 보답으로.

 

게아노르 : 그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물건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을 뿐이라네.

 

??? : 오랜 세월을 살아온 물건이라..... 정확한 묘사군. 시대에 뒤쳐졌고, 암담하며, 먼지에 파묻혔지.

 

??? : 그 물건에게도, 아주 오래 전 어딘가에서 잠시나마 찬란한 순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누가 기억하겠어?

 

게아노르 : .....그곳의 이름은, 카멜롯이라 하지 않나?

 

??? : 그저 옛 시대의 잔재일 뿐이야. 그 전투는 나의 몸과 집을 산산히 부숴버렸지. 나는 그때 이곳으로 돌아왔어―― 시간을 벗어나 공허한 이곳에.

 

??? : 카멜롯은 이미 존재하지 않아. 승자에 의해 이미 역사에서 지워졌으니까.

 

 

허공을 떠돌던 목소리가 감자기 침묵에 잠겼다.

 

 

게아노르 : 알고 있다네. 그 오색찬란한 황금시대를, 나도 일찍이 본 적이 있으니까.

 

게아노르 : 내가 젊었을 적, 우리는 식사나 의복에 대한 걱정 없이 문학과 예술에 푹 빠져 있었지. 자기 자신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모두가 밝은 미래가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흑문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게아노르 : 오래 전에, 나는 왕립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네. 그 중 한 곡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신사는 장갑을 벗고, 허공에 손을 얹어 소리 없는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 : ........《카멜롯》?

 

 

게아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당신이 시간이 있을 때, 종종 내 집에 와서 연주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네.

 

게아노르 :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 : 하하. 나는 이미 수십 년을 홀로 걸어왔는데, 그 사람을 몇 분정도 기다리게 한 것을 신경쓰고 있는 건가.

 

??? : 그렇다면이야, 나도 당신을 더 이상 억지로 붙잡을 생각은 없어. 이만 가 봐――

 

 

 


 

 

 

 

카지 : 시에나, 시에나?!

 

카지 : 휴, 겨우 의식을 되찾았어. 방금 아무리 크게 불러봐도 반응이 없어서 깜짝 놀랐어!

 

프로그램비둘기 : 그래 맞아. 시에나 너 "대위천룡!"하고 크게 소리치더니, 피아노 옆에서 720˚ 새매몸돌리기로 몸을 굴리더니 저만치 날아간 거 알아? 나는 바보같이 그걸 보고만 있었다구.

 

 

》 말도 안 되는 소리.

》 그럼 기절하는 게 아니라 죽었겠지.

 

 

카지 : 네가 기절했을 때 게아노르 씨가 이미 피아노 안쪽에 있던 금실을 찾아냈어.

 

카지 : 봉인의 일부가 다른 곳에도 흩어져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제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게 됐다구!

 

시에나 : 잘 됐다. 그 피아노의 주인은.......

 

게아노르 : 피아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꾸나. 백야관의 주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그도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에뮤사 : 맞아. 우리는 그냥 조용히 들어와서 음악회를 마치고 조용히 떠나면 돼. 이제 돌아가서 다시 준비를 시작해야겠어.

 

에뮤사 : 그렇지, 안화가 이 양관 안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으니 모두에게 청소를 부탁했어! 만약 흩어져 있는 그 피아노의 봉인을 발견하면 시에나와 게아노르 씨에게 제일 먼저 알려줄게.

 

 

 


 

 

모두가 떠난 뒤.

 

 

문서비둘기 : 음...... 무사히 잘 들어온 것 같네요! 그 신비한 악보는 대체 어디에 숨어있을까?

 

문서비둘기 : 에, 에에에?! 사람들은?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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