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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이른 아침 들려온 노크 소리에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잠이 덜 깬 나머지 의식이 몽롱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고개를 들자, 종야오가 언제나처럼 팔짱을 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종야오 : 어이――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자고 있었어?

 

시에나 : 종야오? 이렇게 일찍......

 

종야오 : 평소라면 순찰을 돌 시간이라 중앙청에 물어봤는데, 오늘 아침에 휴가를 냈다며. 그래서 와봤더니 아직 잠에서 덜 깼네. 어디 아파?

 

시에나 : 괜찮아.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밤을 좀 샌 것 뿐이야.

 

 

이유를 말할 수 없어 슬쩍 종야오의 눈치를 보자, 그는 역시나 날카롭게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시에나 : ......일단 들어와!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종야오는 편안히 양반 다리를 하고 팔꿈치를 무릎에 붙인 채 따분해 죽겠다는 얼굴로 방석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가족을 맞이하는 새끼 동물 같았다.

 

 

종야오 : 아, 준비 다 끝났어?

 

종야오 : 음...... 사실 단순히 명문안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니야. 그랬다면 네가 괜찮은 걸 확인했으니 그냥 돌아갔겠지.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거든.

 

 

종야오가 가볍게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서린 웃음은 평소의 장난기 넘치는 미소와는 달랐다. 솔직하면서도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종야오 : 우리 가문의 전통적인 교육대로라면 선물을 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면 안 돼. 하지만, 오늘은 예외야. 그냥 대놓고 말할래――

 

종야오 : 오늘은 접경도시에서 맞는 내 첫 번째 생일이야. 시에나, 네게 축하를 받을 수 있을까?

 

 

 

》 당연하지. 선물도 준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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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의 눈이 반짝거렸다.

 

 

종야오 : 과연. 그래서 아까 어제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를 할 때 대충 얼버무렸구나.

 

시에나 : 가끔씩은 그렇게 예리하게 굴지 말아 줘. 서프라이즈를 못 하겠잖아.

 

종야오 : 이렇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선물을 준비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시에나 : 다음은 내년이야.

 

종야오 : 그럼 내년이 오기 전에, 다른 사람 생일엔 밤 새우지 마.

 

시에나 : 음.......

 

 

동생으로 살아온 버릇이 든 녀석은 가끔씩 다소 제멋대로 굴곤 한다.

 

》 미안, 선물을 깜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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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괜찮아.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해. 아까 받아내려고 한 것도 그거였어.

 

종야오 : 생일 선물이 없어도 그 마음이 중요하니까.

 

시에나 : 그런데 좀 실망한 표정인데? 그 말에 별로 설득력이 없네.

 

종야오 : ........

 

종야오 : 너도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법을 배웠구나......

 

 

종야오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웃음기를 지우고 솔직한 표정을 드러냈다.

 

 

종야오 : 그럼 하루만 시간을 내서 나와 함께 돌아다니는 건 어때?

 

 

방심한 사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종야오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에나 : 방금 네 불만스러운 표정, 주인이 자기 밥그릇에 밥을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고양이 같았어.

 

종야오 : ......?

 

시에나 : 미안, 그냥 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서. 웃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종야오 : ......???

 

시에나 : 아이 참..... 선물도 당연히 준비했지.

 

 

종야오의 눈이 반짝거렸다.

 

 

종야오 : 나도 그럴 줄 알았어. 아님 왜 아까 밤을 새웠다고 말하면서 얼버무렸겠어. 그래서 뭘 준비했는데?

 

시에나 ; 가끔씩은 그렇게 예리하게 굴지 말아 줘. 서프라이즈를 못 하겠잖아.

 

 

 

종야오 : 그래서, 어제 밤에 대체 뭘 준비한 거야?

 

 

서랍을 열어 어제의 성과물을 꺼내 보여주었다.

 

 

종야오 : 축하 카드? 게다가 이렇게 많이? 늦게 잘 만 하네.......

 

종야오 : 후...... 이건 정말 뭐라 할래야 할 수도 없군.

 

 

종야오는 조용히 축하 카드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손끝으로 가볍게 축하 카드의 모퉁이를 만지는 그의 이질적인 두 눈도 따뜻한 감정에 감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에나 : 또, 요리도 배웠어. 직접 생일 상을 차려주고 싶어서―― 네가 너무 빨리 와 버려서 아직 시작도 못 했네.

 

종야오 : 미안, 미안. 갑자기 와서 네 계획을 망쳐버렸네.

 

종야오 :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어떤 요리를 배운거야?

 

 

 

》 네가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게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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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 그거 예약 주문 돼? 생일 아니어도 먹고 싶은데.

 

》 네가 행인두부를 좋아한다는 게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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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정말 맛있겠지만, 다음에 다시 도전해보자. 안 그럼 이상한 곳에서 생일이 다 지나가버릴 거야.

 

》 네가 생선 탕수어를 좋아한다는 게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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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너 그런 것도 알고있어?

 

시에나 : 나한테는 종야오와 함께 지낼 때의 주의사항 목록이 있잖아.

 

 

미묘한 표정이 종야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종야오 : 맛이 어떨지 궁금하니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해 줘.

 

 

 

종야오 : 정말 고마워.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을 줄은 몰랐어.

 

종야오 : 저번 생일이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생일을 어떻게 보내는 건지 기억도 안 나..... 원래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었던가?

 

종야오 : 역시 나도 답례로 뭔갈 해야겠는데. 나에게서 선물을 받는 건 어때. 아니면 널 위해 뭔가 해주는 게 더 좋으려나?

 

 

 

》 네가 기뻐하는 게 최고의 답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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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이 대답은 좀 교활한데?

 

종야오 : 이러다간 네게 신세지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질거야.

 

시에나 : 이런 일을 신세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섭섭해. 우리가 남도 아니고.

 

종야오 : .......미안.

 

종야오 : 그럼 이건...... 그래. 나와 시에나의 교류 증거라고 하자.

 

》 그럼 어울리게 생일 파티용 모자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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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야오 : 네가 내게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협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렇게, 사전 주문 제작한 고양이 귀 모양 생일 파티용 머리띠를 함정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종야오에게 건넸다.

머리띠가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종야오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머리띠를 받아 시원스레 착용했다.

 

 

종야오 : 보고 싶었던 건 이게 다야? 머야, 엄청 간단하잖아.

 

 

종야오가 승자의 미소를 드러내며 웃었다.

 

실패의 치욕을 가슴에 품은 채, 이를 갈며 종야오의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허무하다.

그야말로 정말 허무해.

 

 

 

선물을 주고 방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고 나서야, 종야오가 꽤 오래 여기 머물러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에나 : 맞아, 종야오. 이렇게 중요한 날을 종한구와 함께 보내지 않아도 돼?

 

 

종야오의 표정이 미약하게 바뀌었다.

 

 

종야오 : 내 생일이 형에게..... 가족에게 과연 기념할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종야오 : 나는 보통 사람처럼 생일을 보내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

 

종야오 : 걱정하지 마. 조금만 있다가 돌아갈거야. 형이 손수 요리를 해 준다니까, 생선 탕수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종야오 : 형 이야기는 하지도 마. 집에 돌아오게 하려고 음식으로 유혹하다니, 언제 적 발상이야.

 

시에나 : 음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 아침 일찍 여기 오느라 아직 뭐 안 먹었지?

 

종야오 : 급하게 오느라..... 응? 설마, 솜씨를 시험해 볼 생각이야?

 

시에나 : 종한구가 해주는 건 모두 중식 아침이지? 양식은 어때? 유제품 넣지 않도록 조심할게.

 

종야오 : 그래, 처음은 중요하니까. 네 요리 솜씨에 대한 내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고.

 

시에나 : 걱정 마. 생일 상처럼 큰 상을 지금 당장 차리기엔 힘들지만, 일반적인 아침이야 간단해.

 

 

어제 막 전기 프라이팬과 팬케이크 가루를 받았는데,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만들기에 아주 좋은 도구였다.

 

팬케이크 가루 설명서에 적혀있는 비율로 잘 반죽해 전기 프라이팬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맛 좋고 향기도 좋은 팬케이크가 완성될 것이다.

 

 

시에나 : 재료나 다른 첨가물에 생크림을 넣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돼. 파는 것보다는 조금 허접하지만.

 

종야오 : 허접하다는 말보다 소박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서양식으로 생일을 지내본 적이 없는데, 이걸 생일 케이크라고 생각할게.

 

종야오 : 생일 케이크인 동시에 시에나의 성의니까, 형도 거절할 수는 없을거야. 이따 이거 만장정으로 가져가서 생일 파티를 할 때 맞춰서 먹자. 어때?

 

시에나 : 그때 같이 먹는 건 좋지만 종한구에게 양식을 주면 안 돼. 큰일 날 거야!

 

종야오 : 그냥 아무렇게나 말한거야. 너를 만장정으로 데려갈 이유를 대려고 그랬던 것 뿐이라고. 아무튼 가기로 정한 거다?

 

 

팬케이크를 조각으로 잘라서 종야오와 함께 다 먹었다.

 

 

종야오 : 대접해줘서 고마워. 정말 맛있었어.

 

종야오 : 오늘 정말 고마웠어, 시에나. 나를 위해 이렇게 크고 작은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줘서. 생일을 맞는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어.

 

시에나 : 생일을 맞는 기분?

 

 

종야오는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시건을 떨구었다.

 

 

종야오 : .......내가 아침 댓바람부터 여기 온 이유는, 잠시 내 신분을 잊고 평범한 생일을 맞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였어.

 

종야오 : 다시 생각해보면, 내 탄생은 우리 가족에게 아마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희망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재앙이었을 테니까.

 

 

 

》 다 지난 일이야.

》 넌 이 세계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어.

 

 

 

시에나 : 그 누구도 태어나자마자 자기 삶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는 없어. 모든 잘못은 쌓이고 쌓여서 생기는 거야. 결과만 놓고 네 탄생이 죄악이라 단정짓는 건 말도 안 돼.

 

종야오 : .........

 

 

단순히 '고마워' 라는 말로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듯, 종야오는 가볍게 말아쥔 주먹을 내 어깨에 살짝 부딪혔다.

 

 

종야오 : 나는 줄곧 악몽의 독이 내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와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고 생각해왔어.

 

종야오 : 하지만 가끔씩 이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이 세계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다시 가볍게 웃음지었다.

 

 

종야오 : 이렇게 따지만, 사실 접경도시에서 다시 태어난 그 날도 생일로 쳐서 축하해야 하잖아. 그럼 너도 내 생일을 두 번 축하해줘야겠네?

 

종야오 : 이번 생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작은 목표를 정하도록 하자――

 

종야오 : 내년에는, 우리 함께 '다시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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