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쪽빛의 밤이었다.
그 괴이한 그림에서 도망쳐 나온 지 벌써 이 주가 지났다.
리리코는 모습을 감추었고, 누가 바라보든 미쳐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그림만이 남아있다.
힐다는 잠시 시간을 할애해 누구도 그 그림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흑관을 쫓아 다시 세상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 항구 도시는 어린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당한 모래성처럼, 도시의 동쪽 끝에 아수라장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관청은 중앙청을 포함하여 서쪽에 위치한 세력의 위협에 대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그 땅을 도외시하고 있다. 본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지금은 아주 일부의 사람만이 그곳에 남아있을 뿐이다.
소우란 : ......응. 그래서 내게 전화했구나.
소우란 : 상관 없어. 네 이야기라면 언제든 들어 줄 수 있으니까.
소우란 : 이 재난은 접경도시의 해양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혔어. 하지만 나는 네가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소우란 : 바다와 맞닿은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자연'의 힘을 잘 알아. 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근원이야. 인류는 그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지.
소우란 : 해안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어.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네가 괴로워하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지 그래서만은 아니겠지.
소우란 : 네 죄책감은 '왜 내가 살아남았는가'에 비롯되었으니까. 아마 네 마음 속에는 네가 살아 있어야 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남아있겠지. 분명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예를 들자면, 그 사라진 여자아이라던가.
소우란 : 안심해. 그건 병이 아니니까. 이건 심리학에서 '생존자 내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거대한 규모의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흔히 보이는 현상이야.
소우란 : 너는 네가 살아남은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무엇이든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테고.
소우란 :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람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 속죄할 수 없어.
대화는 긴 침묵에 빠졌다.
시에나 : 미안해.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날이 밝아 버렸네.
소우란 : 날이 밝아? 아직 한밤중이야. 그게 아니라면, 어떤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거야?
시에나 : .......?
그 순간, 비로소 사방의 기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론 이곳은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맞다.
그럼에도 이 하늘은 새벽, 혹은 동이 틀 때의 하늘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밝다.
밤 하늘에 박힌 별 하나 하나의 빛이 유달리 눈부셔서, 심지어는 눈이 약간 따갑기까지 했으니까.
밤하늘의 빛은 층층이 옅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눈 앞의 허공에 희끄무레한 빛이 모여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 : ――――
삐――
바로 그 순간, 전술 단말기가 최고의 긴급 모드로 전환되었다.
안화 : 듣고 있나, 시에나. 측정기 상으로는 네 주변에 고농도 환력 반응이 나타났어. 지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시에나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붕 전체가 마치 특별한 결계에 휩싸인 것 같이 변했다.
짙은 남색의 하늘, 먼 곳에서 작은 빛은 점점이 빛났으며 칠흑같은 손잡이와 회색 벽돌이 빛이 바래 창백하게 변했다. 색채들은 그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소녀의 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녀는 마치 이 하늘 아래 모든 색채를 한데 모은 것만 같았다.
??? : ――――
안화 : 내가 있는 곳에서 보이는군. 그 쪽 하늘의 색채가 퇴색하고 있어. 이전 항구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상 환력 현상과 비슷한 종류 같은데.
안화 : 시에나, 당장 그곳에서 벗어나!
》 움직일 수가 없어.
안화 : 그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능한 한 자신을 보호하도록 해. 근처에 있는 신기사가 지금 바로 지원하러 출발했어.
》 리리코가 있어.
안화 : ........
안화 : 난 네가 본 게 진짜 사람인지, 단순한 환각인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근처에 있는 신기사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 자리를 뜨지 말고 자신을 보호하도록 해.
??? : ――――
소녀는 나긋하게 공중에서 부유했다.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굴은 이전과 달라진 구석이 없다.
소우란의 말이 마치 유령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다.
―― "사람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 속죄할 수 없어."
하지만 만약에, 그 지나가 버린 것들이..... 다시 돌아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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